뿌리깊은 하청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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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수학문제 : 임의의 n분 만들기
수학자들은 습관적을 일반화시키기를 좋아한다. (거의 직업병임.)
http://snowall.tistory.com/1852
일단 이 글을 읽고나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풀어보자.
이 도화선을 이용해서 1분부터 59분까지, 각 1분 간격으로 모든 시간을 잴 수 있을까?
잴 수 있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모든 경우에 대해서 불가능하다면, 가능한 경우가 있고 불가능한 경우가 있을 것인데,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것인가?
일단, 앞에 이미 썼던 쉬운 경우의 문제에 대해서, 15분, 30분, 45분이 가능함은 쉽게 증명할 수 있다. 또한, 만약 n분을 잴 수 있다면 n+15분, n+30분, n+45분을 잴 수 있다. (이것은 쉽게 증명된다.) 따라서 1분부터 14분까지 잴 수 있다는 것만 증명하면 된다.
또한, 만약 n분을 잴 수 있다면 15-n분도 잴 수 있다. (이것 또한 쉽게 증명된다. 15분과 n분을 동시에 재기 시작한 후, n분이 다 끝난 시간부터 15분이 끝날 시간까지 재면 15-n분이 된다.) 따라서 1분부터 7분까지 잴 수 있다는 것만 증명하면 된다.
n분을 잴 수 있고 m분을 잴 수 있다고 하자. 여기서 m과 n은 둘 다 임의의 자연수이고 m>n이라고 하자. 그럼 m-n분도 잴 수 있다. (앞에서 15-n분을 잰 것과 같다.)
만약 n분을 잴 수 있다면 임의의 자연수 m에 대해서 m*n분도 잴 수 있다.(n분을 재는 것을 m번 반복하면 됨.) 따라서 1분을 잴 수 있다면 이 문제는 모두 해결된다.
7분을 잴 수 있다고 하자. 그럼 앞에서 말한 방법을 통해 15-7=8분을 잴 수 있다. 그럼, 따라서, 8-7=1분도 잴 수 있다.
따라서 7분을 잴 수 있다는 것만 증명해도 이 문제는 모두 해결된다.
만약 4분을 잴 수 있으면 8분을 잴 수 있다. 그럼 7분도 잴 수 있고, 따라서 이 문제는 모두 해결된다.
만약 2분을 잴 수 있으면 4분을 잴 수 있으므로 문제가 해결된다.
즉, 1분, 2분, 4분, 7분 중의 하나만 잴 수 있어도 이 문제가 해결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3과 5의 배수가 아닌 분 중의 하나라도 잴 수만 있으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이후로는…아직 생각이 안난다.
그럼, 이제 좀 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를 준비해볼 수 있다.
추가하자면, 이 문제는 대수학 문제다. 군의 정의와 확장이 필요하다.
간단한 수학 문제 : 45분 만들기
하지만, 도화선의 두께가 일정치 않아서, 타는 속도는 제멋대로입니다.
10분동안 절반이 타버릴수도, 1/20만 타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불을 붙이면 정확히 한 시간 후에는 모두 탑니다.
이 두 가닥의 도화선을 이용해서, 45분을 측정해 보세요.
KLDP의 회원들은 이것저것 따지고 있는데, 어쨌든 이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는 제시된 것 이외에는 그냥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좋다. 문제에 제시된 것 이외의 내용을 임의로 가정할 필요는 없다.
풀이는 나중에.
풀이
*이 풀이는 KLDP의 해당 글타래에 이미 제시된 풀이이다. 그닥 snowall만의 독창적인 풀이는 아님.
도화선 1개를 양쪽에서 동시에 불을 붙인다. 그럼, 이 도화선이 다 타는데에는 정확히 30분이 걸린다. (고정점 정리)
도화선 1개를 양쪽에서 동시에 불을 붙일 때, 동시에 남은 하나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 그럼 이 도화선은, 양쪽에 불을 붙인 도화선이 다 탔던 순간, 남은 부분은 30동안 타게 된다. 이제, 양쪽에 불을 붙인 도화선이 다 타는 순간에 한쪽에서만 불을 붙인 도화선의 반대쪽 끝에 불을 붙인다.
위 부분을 마우스로 긁어보면 풀이가 보임. 너무 쉬운 문제이기 때문에, 최소한 2시간 이상 고민 해보고 풀이를 볼 것을 권장함.
엑셀은 쓰레기다
질러보자
http://shop.ddanzi.com/goods/content_n.asp?guid=881
요즘 짧은 글이 좀 늘어나는 것 같지만…
머리가 바쁘니 과학에 관련된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한듯 싶다.
5월 1일에 출시된다는데, 지를까 말까 고민중. -_-;
게임 동영상
챌린저 호와 천안함
우리나라에는 아직 물리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는 없으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이번 천안함 사고에 대해 과연 제대로 된, 과학적인 조사결과가 나올 것인지, 그리고 그 조사 내용을 발표했을 때 과연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쉽게 전달할 것인지, 과학적 근거에 따른 조사 내용이 발표되었을 때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국민들의 과학 교양의 수준은 어느정도인지, 심히 걱정된다.
아직 배 전체를 인양한 건 아니니까 원인을 규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고, 어쨌든 추측과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론에서 원인을 추측하는 것이 과학적인 근거에 따르기 보다는 자기네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라지는 것 같아서 굉장히 우려스럽다. (이건 언론사의 이념적 성향을 막론하고 대부분 그런듯 싶다.)
천안함 사고 취재에 정치부/사회부 기자들 말고 과학부 기자들을 파견해야 그나마 좀 괜찮은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기본 소득 블로그 선언
기본
소득 블로그 선언
이 도시에 남은 것은 성장주의 체제와 그를 보호하기 위한 과시적 통치
뿐이다. 이 나라의 모든 도시는 외환위기와 금융자본주의의 과도기를 지나며 저마다 상표가 붙여졌고, 모든 공기업은 공공성이 아닌
매출액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개인의 주거권, 사회권, 참정권은 물론이고 목숨 그 자체마저도 손익률에 기준해 평가되는 지금,
모든 도시민 역시 성장연합의 상업적 소유품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수탈 체제는 모든 사회공공성을 파괴하고 개인의
삶마저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탈당하는 것은 현재와 과거 뿐만이 아니다. 고작 1년 동안, 10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금융채무자라는 굴레를 덮어썼다.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빠르게 수탈당하고 있다. 아비규환의 땅 위에서 정권은 이 나라가 선진국의
국격을 이룩했다며 축배를 들고, 우리가 쌓아올린 것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 아니다. 가당치 않게도 민주공화국이란 상표로 포장된 이
나라에서, 우리는 정치경제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모두는 오로지 자산이고, 자원이며, 상품일 뿐이다.
생계를
잇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쌓여가는데도 지배자들은 우리에게 더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파업하지 말고, 투쟁하지 말고,
노동조합조차 만들지 말고, 눈을 낮추고, 일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우리에겐 일할 자리도 없다.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어떠한 공공재도, 어떠한 자연적 유산도 허락하지 않는다. 교통과 역사를 자본에게 넘겨주고, 강과 산을 개발산업에게 제물로
바치고, 급기야 사람마저도 생산하려 든다. 자녀를 생산하지 않은 게으른 부모에겐 복지를 제한하고, 지하철 역사에는 자녀를 많이
생산하지 않은 자를 죄인으로 묘사하는 광고를 붙이고 있다. 우리에겐 사회권도, 주권도, 생존권도, 그 어떠한 인격도 없다.
경제적으로 배제된 모든 이들은 인간사회로부터도 배제되었다.
봉쇄된 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배제된 인격에게는 등가교환의 시장적 권리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법과 원칙’이라는 칼날을 들이대지만,
있는 자는 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지난해 정권에 의해 단행된 이건희의 단독특별사면은 만인이 법 앞에 불평등하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을 역사에 각인했다. 만민의 자유를 탈취한 자들은 스스로에게 자유주의라는 기만적 명분을 휘장 삼아 두른다. 그 휘장 아래에서
빈민의 자유는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상의 자유는 법적으로도 통제당한다. 그들은 심지어 자유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지키자고
주장한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지배할 자유이며, 착취할 자유이고, 수탈할 자유다. 피지배자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통제당하는
그들만의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독립되지 않은 그 어떤 누구도 법의 주인이, 국가의 주인이, 사회의 주인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법의 주인, 국가의 주인, 사회의 주인, 자신의 주인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기에.
공화적 자유는 타인의 지배와 간섭 위에서는 보편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사회의 오랜 역사가 이를 실증해
왔고, 오늘날 정권이 노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용산 남일당에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난입한 경찰과 용역들은 지배자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과 맞서 싸운 구사대는 자본가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침략전쟁에 나선 파병군인들은 관료들이었던가?
아니다. 모두가 빈민, 부자유한 자, 그리고 노동자였다. 상처를 주는 역할도, 상처를 받는 역할도 부자유한 자들의 몫이다.
부자유한 우리는 점점 더 악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본질적 모습이 아니다.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습일 뿐이다. 물질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들에게 지배와 간섭은 일상이다.
수탈당한 자유와 권리는 구걸로 돌려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흥정으로 돌려받을 수도 없다. 애시당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수탈당한 우리가 흥정할 자산이 어디에
남아있는가? 수탈당한 모든 것을 돌려받을 방법은 역수탈 뿐이다. 이윤으로 전환된 모든 개인의 삶, 기여 없이 증식하는 자본가치, 이
모든 것은 보편적 개인이 돌려받아야 한다. 모든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은 강제적 환수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사회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삶에 필요한 제반요건을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부자유는 오직 ‘탈취의 부자유’
뿐이다. 오직 우리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1조는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나라이며, 모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실질적 자유를 가지는 나라이다. 국민주권은 국민
모두의 복지라는 사회경제적인 기본 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보편적이고 충분한 복지는 민주공화국의 기초적
토대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모든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노동이나 자산, 가족관계나 그 어떤 것도 민주공화국의 복지를 위한
거래대상이 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의 복지는 보편적이며, 조건이 없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모든 국민은 그들이 실질적인 주권자가
되기 위하여 물질적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억류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이며,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요구이다. 억류된 자유를 해방하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라.
2010년 4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