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의 홈페이지는 파이어폭스에서 제대로 보인다

이건 잡담 카테고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략과 관련된 내용이다.


http://www.microsoft.co.kr


위의 링크는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의 홈페이지 주소다. 가보면 알겠지만, 익스플로러에서는 아주 깔끔하게 보인다. 아, 물론 파이어폭스에서도

동일한

화면이 보인다. 아마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도 제대로 보일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자. 질문. MS홈페이지는 어째서 다른 종류의 웹 브라우저에서도 잘 보이도록 설계가 되어 있을까? MS의 홈페이지 웹 프로그래머/디자이너들이 웹 표준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뭐. 사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난 저것이 MS의 전략이라고 본다. MS 윈도우즈는 명백히 “운영체제”다. 따라서 이것을 팔기 위해서 “이미” 윈도우즈가 설치되어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제품 홍보를 위해서 홈페이지가 제대로 보여야 한다면, 당연히 그 페이지는 윈도우즈가 아닌 다른 운영체제 위에서 돌아가는 웹 브라우저에서 제대로 보여야만 할 것이다. 생각해 봐라. 윈도우즈가 뭔가 알아보러 들어갔는데 글자랑 그림이랑 완전히 딴데 가서 붙어 있고, 뭐가 짝도 안맞고 그러면, 누가 사겠는가. 허접하다고 보지.

운영체제가 아닌 다른 시장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 그 다음이 웹 브라우저 홈페이지이다. 대부분의 웹 브라우저를 배포하는 곳의 홈페이지는 자신들이 홍보하는 웹 브라우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도 깔끔하게 볼 수 있도록 구성된다.



[각주:

1

]



앞서와 마찬가지 이유로 당연히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도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최초로 일어난 곳은 생명체 내부의 화학 반응이다. 다들 알다시피 동물은 다른 생물을 먹어서 활동 에너지를 얻는다. 만약 어떤 동물이 다른 생물과 전혀 다른 단백질 구조를 갖고 있었다면, 그래서 사용할 수 없었다면, 이미 아주아주 오래전에 멸종되었을 것이다. 즉, “호환 가능성”은 생존의 중요한 요소이다. MS의 예에서, “영양분”에 해당하는 것은 사용자가 되고, 그로부터 얻는 에너지는 회사의 수익이라고 보면 된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즉 이미 내가 갖고 있는 것만 이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다른 곳에 있는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하고, 그렇게 되려면 그 에너지 종류가 내게 적합해야 한다.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식민지 통치를 할 때에도, 단순한 무력만으로는 그쪽 국민들을 다 때려잡는 수 밖에 없다. 그쪽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고 하려면 그쪽 사람의 언어를 알거나, 그쪽 사람들에게 자기네 나라 언어를 가르치든가, 해야 한다는 점이다.

pdf포맷은 비록 어도비의 독점적 포맷이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의 표준 문서 형태이다. 그것은 어도비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생성 가능하도록 포맷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hwp 포맷은 한국의 대표적인 포맷이지만, 그저 한국의 대표적인 포맷이다. 전 세계에서 한국사람 빼면, 아는 사람 별로 없다. 그것은 한소프트에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대단한 기술이라고, 진짜로 세계로 나가려면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읽고 쓰고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각주:

2

]



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실제로 사용자가 써야 말이지. 어도비는 당장 수익을 내는 것 보다 파이를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한소프트는 한국에서만 놀 것 같고.

또? 우리나라의 대표적 무술, 태권도가 있다. 태권도가 한국의 자랑스러운 국기이고, 전통 무예이며,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무술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세계 태권도 협회는 한국 협회랑 같은 것 같다. 얼마 전에는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서 빠질 뻔 했다. 태권도가 세계화 되기를 바라면서 한국인이 태권도 금메달을 못따면 쪽팔려한다. 말이 돼나? 물론 한국이 종주국이니까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진짜로 세계화가 잘 되었다면,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챔피언이 나오는게 오히려 자연스럽고, 그래야 더 유명해지지 않겠는가. 생각해봐라. 저기 어디 한국이 어딘지 잘 모르는 나라에서 출전한 태권도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하고, 한국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하고, 태권도는 어떤 경우에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걸까? 다른 나라에서 금메달이 나왔다면, 적어도 그 나라에는 태권도가 홍보가 되지 않을까? 진짜 태권도를 사랑한다면, 금메달에 목매지 말고 태권도 대회 자체를 즐기고, 좋아해야 한다.

자기가 아는 사람하고만 잘 지내는 것과, 자기를 모르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 어느것이 더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인가.

  1. 확인한 적은 없지만, 아마 맞을 것이다. 내가 쓸 수 있는건 MS 익스플로러, 윈도우즈 버전 파이어폭스, 리눅스 버전 파이어폭스 뿐이었지만, 사파리나 오페라에서 보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본문으로]
  2. 지금은 오픈오피스에서 한글97의 hwp형식은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문으로]

거리에서 vs 지하철에는 그리운 사람이 있다

오늘은 시와 노래를 비교해서 감상해 보자.

그리운 사람이 보고 싶은 날은 지하철을 탄다

– 조용우

미워라, 아름다운 사람아

눈빛을 보고도 몰랐더냐

그리운 사람이 보고싶은 날은 지하철을 탄다

책을 읽는 사람

생각에 잠긴 사람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조는 사람

저 무관한 흔들림 속에서 꼬옥 한 사람

산목련같고 수선화같은

물오른 4월의 꽃망울 닮은

내 그리운 그대를 만나네

일상사 늘 서러워 흔들거리면서 가던 길

날 위해 기도해주던 고운 손

드높고 귀한 분 우러러 갈망하던 눈빛 그대는

고단한 내 영혼에 빛나는 샛별이었네

이 세상 무성한 잡초 속에서

비비고 얼굴 내민 여린 풀꽃 한 송이

내 누이같은 그리운 사람아

버스 안에서도 합승택시에서도

어느 날은 미친 듯이 종일 거리를 헤매어도

내 그대를 영영 잃고 말았네

관객이 모두 떠난 텅빈 가설극장 쓸쓸한 외등불 밑

바람에 굴러가는 신문지조각처럼 외로운 이 도시에서

그대가 이리도 그리워져 지하철을 타면

꼬옥 한 사람 옛날 그대를 만나게 되고

나는 조용히 그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아련한 슬픔을 지낸채로

그러나 따뜩한 위로에 싸여 자리에서 일어나네

미워라, 그리운 사람아

사실 이 시를 처음 본 곳은 서울역 지하철 아케이드이다. 거기에는 일부만 소개되어 있는데 전체를 다 읽어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느낌이 온다.

이 시에서 느끼는 것은, 그리운 사람이 보고 싶을 때 밖으로 나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 속에서 그리운 사람의 모습을 부분씩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운 사람이기에, 그리워 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이쪽에서 먼저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반가운 사람이기에 그대 모습의 일부분이라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지하철에 올라타는 것이다.

[성시경] 거리에서

니가 없는 거리에는 내가 할 일이 없어서 마냥 걷다 걷다보면

추억을 가끔 마주치지 떠오르는 너의 모습 내 살아나는 그리움 한번에

참 잊기 힘든 사람이란 걸 또 한 번 느껴지는 하루

어디쯤에 머무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 걷다보면 누가 말해줄 것 같아

이 거리가 익숙했던 우리 발걸음이 나란했던 그리운 날들 오늘 밤 나를 찾아온다

널 그리는 널 부르는 내 하루는 애태워도 마주친 추억이 반가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면 텅빈 거리 어느새 수많은 네 모습만 가득해

막다른 길 다다라서 낯익은 벽 기대보면 가로등 속 환히 비춰지는

고백하는 내가 보여 떠오르는 그때 모습 내 살아나는 설레임 한번에

참 잊기 힘든 순간이란 걸 또 한번 느껴지는 하루

아직 나를 생각할지 또 그녀도 나를 찾을지 걷다보면 누가 말해줄 것 같아

이 거리가 익숙했던 우리 발걸음이 나란했던 그리운 날들 오늘 밤 나를 찾아온다

널 그리는 널 부르는 내 하루는 애태워도 마주친 추억이 반가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면 텅빈 거리 어느새 수많은 네 모습만 가득해

부풀은 내 가슴이 밤 하늘에 외쳐본다 이 거리는 널 기다린다고

널 그리는 널 부르는 내 하루는 애태워도 마주친 추억이 반가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면 텅빈 거리 어느새 수많은 네 모습만 가득해

성시경의 거리에서 노래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헤어졌으나, 아직 나는 잊지 못한 그 사람이 그리워서. 그리움에 못이겨 무작정 밖으로 나갔지만 그리운 모습은 없다. 하지만, 사람으로 가득찬 길거리지만 그대가 없으면 텅 빈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한사람 한사람은 모두 그대의 모습이다. 추억을 되새기며 거리를 돌아다닌다.

이상, 간략하지만 나의 감상이다. 이 둘을 굳이 같이 비교하는 것은 두 노래의 모티브가 같은 곳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표절이라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이 글은 둘이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시사할 뿐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베꼈다는 근거나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다르게 생겼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어떤 모습은 다른 사람의 어떤 모습과 닮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의 어떤 모습들을 모두 합치면, 내가 그리워하는 그 어떤 사람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모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와 닮았고, 다른 사람의 다른 모습을 합치면 나의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닮아가면서 살아간다. 획일화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모두 똑같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닮기를 원하는 것이다. 닮아간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베낀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본질을 지키면서 비슷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본질이 그대로 남아있기에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다.

외로우면, 찾고싶은 모습을 그리자. 그리고 나면 길거리에 나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관찰해 보면, 각자 다른 모습에, 각자 무뚝뚝한 표정 속에, 내가 그리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른다.

당황스러운걸?

이런 신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국에 개인정보가 떠돌고 있군요. 제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서 구글에서 검색해봤더니 딱 뜨네요. 그것도 내껄 포함해서 몇몇 아는 애들 것 까지. 저거 리스트 딱 보니까 2001년도 경기도 과학경시대회 수상자 명단인데, 경기도 교육청을 족쳐야 하나요? (이 부분은

2007년 3월이면 상당히 최근인데, 어째서 6년전 자료가 해킹된채 버젓이 떠도는 건지 모르겠군요.

누구 대책 아시는 분. -_-;

일단 경기도 교육청에 신고했습니다.

추가 : 생각해보니, 동상 받은건 3회 한국과학창의력경시대회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느쪽이든, 해킹당한건 해킹당한거죠.

추가 : 처리되었습니다. 일단은.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는데, 저쪽은 중국 사이트기 때문에 한국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점. 교육청에서 재발방지를 위해서 힘쓸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했고, 아마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저 수많은 주민등록번호를 어떻게 하면 악용되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

양심선언(!?)

난 지난번 총선때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나의 한 표를 던졌다. (이건 사실이다)

다음 중 올바른 이유는?

  1. 한나라당이 싫어서
  2. 열린우리당이 싫어서
  3. 민주노동당이 좋아서
  4. 후보가 여자라서

답은 나만 알고 있도록 하겠다. 물론 당신이 짐작하는 그 답이 정답이므로 내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선택의 기로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윗분께 말씀드렸는데, 그것이 진실이 아니게 되었다. 애초에 내가 잘못 안 것이고, 실제로는 다른 내용이었던 것이다.

선택은 다음과 같은 것이 가능하다.

  1. 내가 말한게 맞다고 우긴다.
  2. 모든것을 말하고 빈다.
  3. 진실이건 아니건 상관 없다고 우긴다.
  4. 틀렸지만 난 잘못 없다고 우긴다.



답이 없다.

블랙홀에 들어가면 정신 차려도 죽는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6/18/2007061801142.html

딱히 조선일보라서가 아니라, 틀렸기에 적는다.

“블랙홀에 빠진 우주선 길만 잘 찾으면 산다…”는 제목을 놓고서 본문에 바로 “물론 이 연구결과 자체가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길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는 말이 나온다. 역시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제목이다. 왜 제목과 본문이 모순인거냐…

제대로 된 제목은 “블랙홀에 빠진 우주선 길만 잘 찾으면

조금 더

산다…” 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부제목으로 들어간 것도 “블랙홀 연구의 새로운 장 열어”인데, 내용은 “신선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라든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아무리 좋게 봐줘도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본문 내용 아닌가 싶다.

논문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짐작하기를, 블랙홀 내부의 공간에서 가장자리로부터 특이점까지 도달하는 최장 시간이나 최단 시간, 최단 경로 등등을 계산한 것 같다.



[각주:

1

]



물론 실제로 블랙홀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여는 획기적인 논문일 수 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저 기사는 아무튼 제목 및 부제목과 내용이 모순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블랙홀에 들어간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다.


넌 이미 죽어있다.

  1. 논문을 읽지 않았으므로 이 얘기는 어디까지나 추측이며, 사실과 관련이 없다.

    [본문으로]

이휘소 평전

이휘소 박사는 천재였다. 그리고 노력했다.

나 역시 입자 이론을 위해 공부하고 있지만, 이분 노력한 열정과 재능은 따라갈 수 없는 높은 벽이라고만 생각된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나도 아니지만.

뭔가 대단한 것이 느껴지는 책이다. 지금 나는 석사과정을 벅차게 버티고 있는데, 그분은 25살때 박사…

뭐 시대가 다르니까 어물쩡 넘어가자.

그러나 본받아야 할 점은, 자신의 재능을 잘 알고 그것을 철저히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자만하지도 않고 순수하게 노력했다는 부분이다.

노력해야지. 근데 난 오늘도 놀고 있다. 에휴…아직 덜 컸어. 나도.

그리고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싶지 않게 되었다. 소설이 명예를 높였다고 해도,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 허위인 부분의 명예라면, 그건 명예를 높인 것이 아니지 않은가.

대입

공부가 안되니 잡념만 떠오른다.

요새 대학 입시 제도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내신 죽이기, 수능 무시하기, 뭐 이런건가. 내신 1등급이 수능 7등급이면 이상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대학에 가는데,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뽑기를 원한다. 평가 기준은 세가지 정도가 있다. 고등학교에서 올라온 것, 국가에서 보증한 것, 대학 자체에서 평가한 것. 이른바, 내신, 수능, 본고사(및 면접, 논술 등등 포함)를 말한다. 그럼 어떤게 가장 믿을만할까? 당연히 대학 자체에서 평가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마다 갖고 있는 인재상이 있고, 그 인재상에 맞게 평가했을 테니까 당연히 대학 자체에서 평가한 것이 대학이 원하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데에는 가장 정확할 것이다.



[각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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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고사 금지. 대학 좌절.

내신과 수능, 두가지 기준을 두고서 뭐가 더 정확하냐, 이걸 봐야 하는데. 수능은 전국구 줄세우기고 내신은 동네 줄세우기다. 당연히 수능이 더 정확하다.

해서 수능을 보려고 했는데 등급제 전환. 대학 또 좌절.

볼건 내신뿐이다. 교육부는 내신을 50%이상 반영하라고 친절하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허나 내신은 대학에서 별로 보고싶어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학에서는 뽑을 수 있는 기준이 사라졌다.

결론은 수험생 좌절.

자, 누가 우수한 학생일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 누가 대학에 가야 할까?

생각해 보자. 학부모들은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한다. 자신이 키워낸 자식이기에, 자신이 얼마나 잘 키웠는지를 평가받고 싶은 것이다.



[각주:

2

]



서울대에서 기준을 엄격하게 올려서 진짜 천재들만 진학하게 되면 서울대 수준은 확실하게 올라간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애들을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애들의 고통은 올라간다. 애초에 서울대에 갈 생각도 없고, 서울대에 갈 능력도 없고, 또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나은, 그런 아이들까지 모두 서울대에 갈 것을 요구받으며 고통속에서 살아간다. 운이 좋아서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그게 안되면 그동안의 노력은 누구한테 보상받나? 고등학교 3년간 수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텐데, 그걸 오직 대학교 합격이라는 엽기적인 목표 하나만 두고서 다른 경험을 하지 않는다면 그 학생의 잃어버린 3년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스스로가 원해서 그렇게 했다면 모를까, 유언 무언의 강요를 받아서 공부한 학생은 참 힘들지 않을까. 시간 낭비고. 반대로, 서울대가 시험 기준을 느슨하게 해서 많은 학생들이 진학하게 되면, 어쩌다가 진짜 천재들이 못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이건 국가적 손실이다. 그리고 평가가 공정하지 않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토할 것이다.

애초에, 서울대에 가야 한다는 것, 명문대에 가야 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아니고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심지어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 조차 인생의 목적이 되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을 갖고 개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그 자체로 인생의 목적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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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세계 100대 대학이 나오려면, 대학은 진짜 천재들이나, 진짜 노력하는 사람들이나, 아무튼 될성 싶은 학생들만 입학하고, 들어와서도 베낀 레포트나 부정 시험같은 대충대충 넘어가는 공부가 아니라 제대로 된 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리고 대학에 가는 것만이 지상 목표가 아니라,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워줘야 한다. 이미 “대입”이라는 것으로 목표를 한정하는 순간, 다른 꿈은 모두 죽어버린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우리나라는 멀쩡한 대학 졸업하고서도 취직에 목을 매다가 자살하나?

그리고 공교육. 고등학교 교육. 여기도 문제가 많다. 고등학교의 이름이 대학교 진학률 하나만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내신 부풀리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어느 한 고등학교가 시작하면 다른 모든 고등학교가 따라하게 마련이다. 여기에 가장 좋은 해법은 제대로 된 평가 문제를 내는 것이다. 학생들이 빵점을 맞건 5점을 맞건, 100점짜리 시험에 평균이 10점이 되든 말든, 학부모들이 욕하건 말건, 배워야 하고 공부해야 하는 내용을 시험에 내라. 가혹하다고? 학생들은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럼 진짜 쉬운 수능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10년정도 지나면 진짜 명문 고등학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피해보는 학생들은 어쩔 거냐고? 내년에 입학하는 신입생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겠는가. 현 재학생들은 그냥 하던대로 하고.

대학도 취업률 하나만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학점 부풀리기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마찬가지다. 제대로 가라.

어중이 떠중이 대졸자를 생산하느니, 애초에 안될 사람들을 일찍 포기시키고 다른 길 찾게 하고, 그 고난을 이겨낸 악착같은 사람들만 성공하는 것이 더 낫다.

  1. 이 부분이 본고사를 부활시키자거나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원하는 학생 선발은 대학이 원하는대로 뽑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본문으로]
  2. 원래 그게 평가기준이 될 리가 없지만.

    [본문으로]
  3. …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문으로]

한반도 운하. 만드는 건 좋은데…

간만에 적는 정치 글이다.

한반도 운하에 대해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되든 안되든 이씨 아저씨가 떡밥 하나는 제대로 던진 셈이다. 원래 정치얘기 안하려고 했지만, 워낙 말이 많아서…-_-;

대체적으로, 난 운하의 효용성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대단히 부정적이다)

산줄기 달리는데 이미 기차와 자동차가 있다. 여기에 기차나 자동차보다 느린 배까지 다녀야 하는건가? 게다가 배의 크기가 제한되기 때문에 대용량 수송도 불가능하여 규모의 경제도 실현이 안된다.

그러나, 이걸 굳이 해보겠다는 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겠지?

자, 만약에 이씨 아저씨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면, 부탁이 있다. 추진 하세요. 꼭.

대신, 일단 다 짓고나서 빼기 없기예요. 잘되든 쪽박나든 책임지라는 겁니다.

뭐, 한 10년쯤 후에 경부운하의 수익률이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하군요. 흥미롭게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아, 그 전에 저는 남자후보는 찍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이씨 아저씨를 찍어드리지는 않겠지만, 일단 당선되시고요, 꼭 만드세요. 꼭이요.

종교의 자유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다는 종교의 자유. 그건 뭘까.

종교도 자유도 어느 하나 가볍게 다룰만한 주제는 아니지만, 그냥 가볍게 생각해 보자.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종교의 자유가 있을까?

이 질문은, 오늘 또 만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내게 계속 교회 다닐 것을 얘기하는 아저씨를 만났기 때문에 떠올랐다. 교회 나오면 내가 모르는 많은 것이 있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며, 참된 평화와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물론, 물리학에도 똑같은 것이 있다는 점. 물리학에는 내가 모르는 많은 것이 있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며, 참된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근데, 종교는 그 종교 자체로부터 자유로운가? 즉, 어느날 갑자기 신앙이 사라져서 그 종교의 교의를 따르지 않게 되는 경우, 그 종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내가 한때 몇번 낚여서 교회에 나갔던 경우, 일요일날 한번 갔다가 그 다음주에 안나가니 전화가 온다. 교회 오라고. 그럼 나가야 하나? 왜?

난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된다면 순수한 자유 의지로서 가기를 원한다. 그런데, 내게 전도하는 사람들은 나의 의지를 왜곡한다.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건지 누가 얘기했기 때문에 가고싶어진ㄷ건지 구별이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권유를 받는 한 교회에 나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물론 권유하지 않는데 나갈 이유도 없겠지만.

이상하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참 행복한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은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행복해지게 만들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한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하면, 그건 착각이며 참행복은 교회에 있다고 한다. 아니, 뭐, 그렇겠지. 근데 그렇다고 날 억지로 끌고 가려 하시면 곤란하지요.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맨날 같은 레퍼토리다. “교회다니고 복받으세요”

내가 괴로운 이유는, 자꾸만 나를 귀찮게 하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적이다.

내가 신에게 원하는 단 한가지는, 신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없는척이라도 좀 해주던가.

여전히 교회에 다닐 것을 권유받는 나에게, 종교의 자유는 없다. 전 세계인을 교회에 다니게 만들라는 교리가 이상한 거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한국 교회인들이여, 나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 자꾸 얘기해서 세뇌시키는 건 통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