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snowall

  • 소고기 문제의 분석

    이 문제는 FTA와 관련되어 좀 복잡한 문제다. 다만, 소고기 수입과 관련된 부분만 다뤄본다. 그리고 난 전문가가 아니며, 제대로 상황을 아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틀린 부분이 있다면 어디든 지적해 준다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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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는 한국에 소고기를 팔려고 한다. 돈이 되니까.

    한국에서는 소고기를 수입하려고 한다. 역시, 돈이 되니까.

    돈이 되니까 사고 판다는, 서로의 이익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무역 행위이다. 만약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했거나 원하는 만큼의 이익을 얻지 못한다는 판단이 있었다면 단 소고기 한근조차 수출하거나 수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두가지의 문제점이 있는데, 하나는 “광우병”이라는 위험 요소가 가능성으로서 제기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 축산 농가의 붕괴”라는 도의적 측면에서의 문제이다. 참고로, 국내 축산 농가의 붕괴는 잠시 후에 다뤄볼 것이고, 일단은 광우병에 대해서 논의해 보자.

    광우병에 대한 여러가지 소문들은 사실일수도 있고 거짓일수도 있다. 사실이라고 일방적으로 믿기에는 근거가 부족한 것 처럼 보이고, 거짓이라고 일방적으로 믿기에도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건너온 소고기가 위험하다는 말이 사실일 가능성은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말 만큼이나 사실인 것일까? 내 생각에는, 그보다는 좀 더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물론 개인적인 판단은 고려하지 않겠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무리 양보해도 “아직 위험한지 어떤지 가능성이 밝혀지지 않았다” 보다 물러설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말의 뜻은, 위험한지 어떤지 가능성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구강 청정제”의 예를 들어보자. 구강 청정제의 겉 표지에 써 있는 주의사항에는 “이 약은 구강 청정용으로만 사용하고 내복용이나 기타 용도로 사용하지는 마십시오”라고 써 있다. 하지만 입 안에 넣는 것이 늘 그렇듯이 아무리 주의해도 어느정도는 사람이 삼킬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강청정제는 사람이 마시더라도 안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구강청정제를 컵에 따라놓고 한번에 쭉 들이킬 사람은 있을까? 시킨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킨 놈이나 하는 놈이나 둘 다 바보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광우병에 걸린 소는 분명 광우병 발생 인자를 갖고 있다. 광우병에 걸리지 않은 소가 광우병 발생 인자를 갖고 있을 가능성 또한 있다. 반대로, 광우병 발생 인자를 갖고 있지 않은데 광우병에 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인과율)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안심할 수 있는 것은 “광우병 발생 인자를 갖고 있지 않은 소”의 고기이다. 정부의 주장은 “광우병에 걸리지 않은 소는 광우병 발생 인자를 갖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참인가? 논리학을 아주 조금만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고등학교 정석에도 있다.) “p이면 q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라고 해서 “q이면 p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보장은 없다. 둘은 독립된 명제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장은 한층 더 나아가서 “광우병에 걸린 소라 하더라도 광우병 발생 인자를 모두 제거한 소는 괜찮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 주장의 진리값은 “참”이다. 놀랍게도, 광우병 발생 인자를 모두 제거한 소는 광우병 발생 인자가 없는 소이므로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런 고기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 제거할 수 있는가? 여기서, “모두”라는 것에는 “충분히”라는 뜻이 숨어있음에 일단 주의해 두자. 인간에게는 면역 체계가 있기 때문에 어떤 병이라도 단 1번의 원인 물질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드물다. 몸의 세포가 원인 물질에 아주 많이 노출되어야 병에 걸린다. 따라서, 우리 몸이 가진 불명확성 때문에 “모두”제거한다는 아주 명확한 표현이 “충분히” 제거하면 된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따라서, 정부의 주장은 이제 “광우병에 걸린 소라 하더라도 광우병 발생인자를 충분히 제거한 소는 괜찮다”는 주장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얼마나 제거해야 “충분히” 제거하는가? 광우병 발생 인자로 알려진 변형 프리온 단백질 분자가 10000개 이하면 충분한가? 1000개 이하? 그것은 누가 세는가? 누가 보장하는가? 모두 세어볼 수 있는가?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치게 되면 정부의 주장은 더이상 설득력이 없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정부는 억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을 보면 “충분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어느정도나 줄이고 검사해야 충분한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검역을 강화한다고는 말하는데, 얼마나 강화하고, 실질적으로 강화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믿을지에 대한 신뢰성 보증에 대한 방법이 없다. 단지 믿으라고만 하는데, 그걸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주 많은 사기꾼들은, 신뢰성을 먼저 쌓는다. 즉, 십만원, 이십만원 정도의 소액을 꾸준히 빌리고 제때 이자까지 제대로 쳐서 값는다. 이렇게 아주 많이 해서 신용을 높인 후, 갑자기 억대의 거액을 빌린다. 빌려주는 사람은 믿고 빌리지만, 원래부터 먹튀가 목적이었던 사기꾼들은 이 돈을 들고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따라서, 돈을 빌려줄 때는, 그 사람이 실제로 갚을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안전을 위해서 보증도 세우는 거고 신분증도 받아두고 차용증도 쓰고 각종 안전장치를 해 두는 것이다. 그런 마당에, 정부가 말하는 일방적인 믿음의 강요는 그다지 신용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건국 이래 지난 50년간 정부가 국민들에게 높여준 것이라고는 불신의 벽 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정부가 믿으라고 해서 그걸 그대로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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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더 멀리 내다보면, 받아들일만한 수준의 검역 절차를 거친다 하더라도 문제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발언에도 있었듯이, 소고기 수입의 목적은 “국민들에게 품질 좋은 쇠고기를 싼 가격에 맛보게 하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광우병과 관련되어 국민들이 믿을만한 수준의 검역 절차를 거친다면 거기서 발생하는 검역 비용과 통관을 못한 만큼의 공급 부족으로 그리 싼 가격에 쇠고기가 공급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 원가의 차이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는 국산 쇠고기보다 가격이 쌀 것이기 때문에 국내 축산 농가는 줄어들 것이고, 국내에서의 공급이 줄어들게 되면 어찌되었든 쇠고기 가격은 올라간다. 따라서, 지금보다 크게 비싸지지는 않더라도 쇠고기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 또한, 이미 우리나라는 쇠고기 가격이 높은 가격대에 형성되어 있으므로 유통업체들이 유통마진을 그만큼 챙겨먹는다면, 실제 소비자가 체험하는 쇠고기 유통 가격은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이 부분이 해결되어서, 아무런 문제 없는 품질 좋은 쇠고기가 아주 싼 값에 들어와서 국민들이 쇠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된다고 해 보자. 그것도 문제다. 그렇게 되면 국내 축산 농가에서는 더이상 소를 키우지 않게 될 것이다. 국내에서 키우는 소가 없어진다면 우리나라의 쇠고기 가격은 모두 미국산 쇠고기의 가격에 좌우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쇠고기 가격의 안정성은 전적으로 미국 축산 경제 상황에 좌우되고, 이것은 어찌되었든 한국의 대외 경제 의존도를 높일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쇠고기 뿐만 아니라 쌀과 관련된 FTA 협상에서도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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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우리나라가 미국산 쇠고기를 어쨌건 수입하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국익에 전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에는 문제가 없는가?

    문제가 많이 있다. 어떤 정치가나 어떤 지도자도 집단 내의 모든 요구를 전부 다 들어줄 수는 없다. 이것은 집단이 커질수록 더욱 더 크게 발생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지도자는 그중에 어느 집단의 편을 들어줄 것인지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물론 TRIZ라는 방법론을 이용하면 뭔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걸 잘 쓰는 사람이 없으니 이모양 이꼴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도자가 어느 집단의 편을 들어줄 것인지 선택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타당한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쪽이 실제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어느쪽이 더 많은 지지자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쪽이 더 큰 피해를 보는지, 어느쪽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지, 이 기준들은 그다지 타당해 보이지 않겠지만 아무튼 뭔지 몰라도 타당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타당한 기준은 누가 타당하다고 봐야 하는가? 기준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집단 내부에서의 합의가 필요하다. 즉,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결론을 내기 위한 여러가지 기준을 잡기 위해 필요한 합의는 편이 갈라져서는 안된다.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이익을 보는 쪽이 달라지고, 이때문에 기준을 잡는 것 자체가 편을 선택하는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쨌든, 선택을 위한 기준을 잡는 것은 집단 구성원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합의 없이 자신의 의견과 맞는 일부의 의견을 선택하여 강행하는 것은 권력을 위임받아서 일을 수행하는 대표 지도자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역시, 신에게 선악의 구분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처벌받지도 않고, 신은 책임질 필요도 없다. 신은 그냥 있으니까 신이다.

  • 배경화면

    내가 요새 쓰는 배경화면 소개 및 백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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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의 주제는 노아의 동물 전문 이삿짐 센터. 아저씨가 동물들을 트레일러 트럭 안에 꾸겨넣고 있다. 저기에 기린이 들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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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의 주제는 낚시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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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의 주제는 주객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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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바람난 빨간망토.

  • 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주의 : 이 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다.

    우리의 그 말도 안되게 위대한 신 이명박이 잘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시는 분?

  • 12번째

    뭐랄까, 매주 만난다는 느낌…-_-;

    오늘은 “업보”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했다.

    토론 내용은 둘째치고…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진리가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지? 이에 대한 질문에, “나는 잘 모르지만, 내가 있는 곳에 와서 공부를 많이 한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면 뭔가 얻을 것이 있을 것이다” 라고 답변했다. 그럼 스스로도 잘 모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진정한 나를 찾고 싶지 않느냐고 내게 물어본다. 자신들은 그 방법을 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통해서 찾아낸 “진정한 나”라고 부르는 것은 진짜로 “나”인가? 내가 나라고 깨닫는다면, 그것은 “나”인가? 그것이 내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나”라고 믿는 것은 실제로 “나”인가? 그리고 그렇게 믿고 있는 주체는 또한 “나”인가?

    이러한 질문이 말장난으로 들리는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떠한 진리도 끝없이 의심하는 한 진정한 진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에 대해서 뭔가를 찾으려 하기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아는 것이 진리임을 인정하고 의심을 멈추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진리”를 진리로서 인정하고 의심을 멈추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차피 진리를 향한 끝없는 탐구 과정의 어느 한 부분에서 멈추는 것일텐데, 여기서 멈추든 저기서 멈추든 무슨 상관일까.

    이번에 만난 아가씨는 지난주에 만났던 2인조 여자분들보다는 예쁜 편이었지만, 내게 말을 거는 여자들은 어쨌든 왜 “도”를 공부하는 사람들 뿐인 것일까.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이 궁금할 따름이다. 그게 운명인가? 인연이라는 건가? 나의 업보인가?

  • 11번째

    앞으로는 똑같은 얘기를 듣게 되면 횟수만 세고 적어두지는 않으련다.

    하늘이 파란 것이 자연스럽듯이

    사람이 죽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조상의 업을 풀어드리고 덕을 쌓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다.

    이해 되십니까?

    그건 그렇고, 신기하게 내 마음을 잘 알아맞추는 것 같긴 한데, 왜 내 얘기를 들으려고는 하지 않을까.

    자기 얘기만 계속 하고, 내가 속에 묻어둔 말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내 철학도, 내 종교관도, 내 사상도, 그저 책 몇자 읽고 떠벌이는 것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자신은 깨달았다고 한다.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말로 나를 유혹한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는 건 어릴 때의 몇번으로 충분하다. 나 스스로가 깨닫기 전에는 모를 일이다.

  • 몸이 2개라면?

    일단 몸이 바쁘다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최근 다시 감상하고 있는 공각기동대의 영향이 좀 큰 것 같다.

    공각기동대를 보면, 다른 사람의 뇌를 해킹해서 그 사람이 보는 시야를 그대로 훔쳐 볼 수가 있다. 또한, 자신의 의식을 다른 몸체에 넣어서 그 몸체를 조작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다른 몸체에 넣어서 그쪽을 조작하고 있을 땐 원래의 몸체는 정신줄을 놓아버린다는 점이다. 물론, 스토리 후반부에 가 보면 쿠사나기 소령은 2개나 3개의 몸을 동시에 제어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런 그 조차도 2개를 동시에 움직이는 것을 힘들어 한다.

    그래서 떠오른 질문이다.

    몸이 2개라고 한다면, 어떻게 1개의 의식으로 2개의 몸을 제어할 수 있을까?

    일단, 반대로 몸이 1개인데 의식이 2개인 경우는 2중인격이라든가 하는 등의 증상을 보여지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그리고 몸이 2개이고 의식도 2개인 경우는 아무 문제가 없다.

    1개의 의식으로 2개의 몸을 제어할 수 있으려면, 일단 2개의 몸이 1개의 개체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예를들어 인간의 좌뇌와 우뇌는 뇌량을 통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 만약, 신경이 길게 연결되어서 2개 몸체에 붙은 뇌를 연결하는 거대한 뇌량이 존재할 수 있다면 두개의 뇌는 서로 정보를 교환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좌뇌와 우뇌가 각각을 따로 인지하지 못하고 1개의 의식으로 합쳐져서 보이듯 두개의 뇌 역시 1개의 의식으로 합쳐져서 보일 것이다.

    이제, 가정을 좀 더 확장해서, 뇌량을 무선 기술로 연결할 수 있다고 해 보자.

    그럼 이제 우린 2개의 몸체를 가진 1개의 의식을 현실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손 4개, 손가락 20개, 발 4개, 눈 4개, 귀 4개, 코 2개에서 들어오는 대량의 정보를 처리하는 것 또한 문제이다.

    아마, 실제로 현재 인간 의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몸을 2개 갖게 된다면 아마 그 사람은 어느 한쪽은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 것이다.

    일단, 4개의 눈에서 들어오는 영상을 처리한다고 생각해 보자. 기본적으로, 우리 몸은 눈을 2개를 갖고 있긴 하지만 그 2개의 눈에서 들어온 시각정보는 따로따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1개로 합쳐져서 3차원 영상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몸이 2개 있다고 해서 4개의 눈에서 들어오는 것을 따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3차원 영상을 2개 보게 된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되면 카멜레온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카멜레온은 양쪽 눈을 따로 움직이다가 거리를 정확히 측정할 필요가 있을 때 한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킨다고 한다. 2차원 영상 2개를 모아서 3차원을 만들어 내듯, 아마 이 경우에는 3차원 영상 2개를 모아서 4차원 영상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차원 영상이라고 해도 미래와 과거를 본다는 뜻은 아니고, 3차원 물체를 동시에 여러가지 방향에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두개의 몸이 서로 다른 장소에 있다 하더라도

    그럼, 귀가 4개라면? 귀의 역할은 청각 기능과 균형을 느끼는 기능을 하는데, 그중 청각 기능은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인간은 여러가지로 각종 잡음에 시달리면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것이 귀가 2개에서 들려오든 4개에서 들려오든 잡음으로 섞여서 들릴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중에서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균형을 느끼는 감각의 경우, 좀 복잡해질 것 같다. 가령, 한쪽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다른쪽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인간의 균형 감각을 잡는 기관은 왼쪽과 오른쪽이 동시에 한쪽으로만 기울어지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이 감각기관이 나눠서 기울어진다면 아마 엄청난 멀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다가 이미 시각 정보는 둘로 나눠져서 들어오고 있다. 따라서 정말 왼쪽과 오른쪽이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지듯이 멀미가 발생할 것이다.

    몸이 2개로 되면서 생기게 되는 촉각, 후각, 미각 정보의 홍수는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쪽 감각에는 인간은 크게 의존하지는 않고, 어느 몸에서 왔는지 정도만 알 수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말은 어떻게 할까?

    어떻게 걸어다닐 수 있을까?

    손은 어떻게 움직이게 될까?

    과연, 진짜로 작업시간이 절반가량으로 줄어들게 될까?

  • LCD vs. CRT

    예전에 CRT는 구부러진 화면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 기술이었다.

    요즘의 LCD는 평평한 화면을 구부러지게 만드는 것이 기술이다.

  • 소리없이 사라진 한블연

    한블연이 없어졌다. -_-;

    잊고 사는 것들



    [각주:

    1

    ]



    에 대한 아련한 아쉬움이 남는 지금 시점에서 다시한번 그 막장 소모임을

    추모

    추억해 본다.


    http://www.kbu.or.kr


    1. 대운하 논쟁, 핸드폰 요금 논쟁, 인터넷 종량제 논쟁, 의료보험 민영화, 북한, 티벳 독립 운동, 미얀마 민주화 운동과 허리케인, 중국 대지진, 위안부 할머니들, 독도 주권, 태안반도의 기름…

      [본문으로]

  • 인디아나 존스

    스포일러는 없는 감상이다.

    오래간만에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영화는 핵폭발과 함께 시작한다.

    감상은 “스필버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한 것 같다”는 느낌.

    이 이상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므로 그만. -_-;

    꽤 재미있는 모험영화이므로 돈이 아깝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 공무원 이야기

    예전에도 몇번 언급했던 것 같은데, 나의 아버지는 중앙 청사에서 근무하시는 공무원이다.

    아버지께서는 23년정도 근무하셨는데, 여전히 5급 대우다. (5급은 아니지만 5급으로 대우해준다는 뜻. 즉, 5급이 아니다)

    최근, 지랄맞은 최고위급 공무원이 들어오는 바람에 인사에서도 실용주의가 도입되고 있다.

    덕분에 아버지는 다시 대전 청사로 가게 될 수도 있다.

    원래는 광화문 중앙청사에서 근무하시다가, 몇년 전 지랄맞은 인사담당자 때문에 대전으로 발령을 받아서 1년정도 있다가 다시 작년에 과천으로 간신히 올라왔다. 웃기는건, 아버지가 대전으로 갔기 때문에 대전에서도 한명이 서울로 올라왔는데 서로 피해를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나이 50이 되어 말년에 주말부부가 되었고, 덕분에 어머니께서도 숱하게 대전에 내려갔다. 그리고 대전에서 올라온 그분은 대전의 집을 팔아서 서울에 집을 장만했는데, 전세로 잡았는데도 집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_-;

    그리고 다시 지랄맞은 최고위급 공무원 때문에 다시 섞고 있다. 과천에서 대전으로 갈 사람과 과천에 남아있을 사람을 고르는데, 어쨌거나 어디에 가고 싶다고 지원서를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선정 기준이다. 결국은 인사 담당자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셈인데,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일 잘하는 사람은 일 많이 하라고 계속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고, 일은 못하지만 인사 담당자랑 술마시면서 얘기를 좀 나눴던 사람들은 어차피 일도 못하고 일을 많이하면 안되니까 인사 담당자가 곁에 두고 두고두고 보살피면서 얘기를 나눠준다고 한다.

    이 얘기에서 인사 담당자의 공무원들을 향한 사랑이 느껴지면 당신은 이명박.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