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snowall

  • 요즘 직딩

    요즘은 이래저래 막장인 사람들이 많다.

    주의 : 제목을 “요즘 직딩”이라고 붙였다고 해서 이 글의 내용에 대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려는 것은 아님.

    오늘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서울역은 회차점이기 때문에 항상 앉아서 올 수 있다. 내가 앉은 자리는 버스 뒷바퀴가 있는 자리로, 조명이 밝아서 버스에서 책읽기에 나름 편안한 자리다.

    어쨌든 난 책을 펴고 읽다가 잠깐 졸았는데, 내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내리고 다른 사람이 앉았다. 대략 50대가 되기 직전으로 보이는 아저씨. 노트북 가방을 들고 있었다.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는데, 새하얀 A4종이 뭉치다. 뒷면은 사용하지 않은 것, 즉 이면지가 아니다. 거기에 명조체로 잉크 절약모드에서 인쇄된 문장들이 보였다. 보통은 “책”을 읽지 인쇄물을 읽지는 않는다. 일단 대화가 많이 있으니 논문은 아니다. 당연히 프로그램 소스코드도 아니다. 뭘 읽는가 싶어 곁눈질로 나도 같이 쭉 읽어봤다.

    어머나, 야——–설



    [각주:

    1

    ]



    이네. -_-;

    아, 참고로 난 20대 중반의 건전한 남자다.

    혹시나 싶어, 소설가 중에 가장 노골적이라는 마광수씨의 작품을 읽는가 싶어 잠시 살펴보니 그 글의 끝에 “출처 : 성———인 무료 커뮤니티 xxxxxxxxxx”라는 출처와 함께 무슨 홈페이지 주소가 적혀 있어서

    얼른 외웠다

    야———-설 맞다.

    대략 20페이지 정도를 그렇게 주의깊게, 천천히, 내색도 안하고 진지하게 읽으셨다. 그분.

    물론 주변 상황을 살펴봐서 자신의 시선보다 위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 감지되면 슬그머니 인쇄물을 말아쥐고 어디까지 왔는가 살펴보신다. 기본은 되어있다.

    슬쩍 얼굴을 살펴보니 선배중에 음양의 도를 깨우쳤다고 전해지는 안 모 선배님의 얼굴과 너무나 닮아서 깜짝 놀랐다. 물론 그분은 지방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있을리가 없지.

    아무튼 나랑 같은 정거장에서 내렸다.

    대단히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아니, 요즘도 야——–설 읽는 사람이 있나. 영상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이 시점에서. 그것도 그거지만, 대략 어떤 회사의 부장급(적게 봐도 과장급) 되어보이는 아저씨가 노트북 가방에서 꺼낸 인쇄물이 야설이니, 그걸 점잖게 진지하게 읽고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있는 나는 참 즐겁지 않았을까. – 야———-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얘기가 아니예요!

    요즘 초딩에 이은 요즘 직딩 시리즈도 계속될 것인가…과연…

    * 낚여서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 조금 편집했습니다.

    1. 야설은 야——–한 소설의 줄인말이다.

      [본문으로]

  • 사이언스올 가입화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난감한 상황. (

    그리고 안습

    )

    직업은 무직인데 학교/회사명은 필수.

  • 레몬펜 삭제했어요

    레몬펜을 며칠 설치해 두었다가 삭제했다. 당분간은 다시 걸지 않을 생각이다.

    1. 레몬펜은 다른 사람이 어느 부분을 강조해서 읽었는지 알게 해 준다. 이것은 양날의 칼이다. 글쓴 사람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뿐만이 아니라 글을 읽은 사람들이 강조하는 부분도 드러난다. 다른 사람에게 글을 읽을 때 선입견을 갖게 할 수 있다. 정보가 덜 전달되지는 않겠지만 왜곡되어 전달될 가능성이 조금 있다. 그리고 한두줄은 괜찮겠지만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어있는 메모는 가독성을 현저하게 떨어트릴 수 있다. 앞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 레몬펜의 개념 자체는 개인화 서비스다. 즉, 내가 중요하게 읽은 부분에 나의 메모를 적어놓고 그것을 남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용은 사이트 주인이 해줘야만 가능하다. 내가 다른 어떤 사이트에서 뭔가를 읽고 그 글을 스크랩하고 싶다면 그쪽에서 레몬펜을 제공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웹 브라우저에서 플러그인으로 제공하는 북마크가 더 낫다. 물론 레몬펜이 꼭 북마크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내 메모를 내가 원하는 곳에 내 마음대로 남길 수 없다는 점은 단점이다. 가령, 네이버 뉴스에 뭔가 메모를 해두고 싶으면 네이버에서 레몬펜을 제공해야 한다.

    3. 이를 위해서, 서비스 컨셉을 이렇게 하면 어떨까. 내가 레몬펜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임의의 웹 사이트에 메모를 남기면, 누군가 레몬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이 그 사이트에 들어가면 레몬펜 서버에서 메모 정보를 읽어서 웹 브라우저에 현재의 레몬펜처럼 뿌려주는 것이다.

    4. 어쨌든 서비스는 신선하고 재밌다.

  • 회사 다녀요

    네, 회사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회사에서는 블로깅을 안합니다.

    원칙적으로 못하는 게 맞고, 다들 눈 피해서 그럭저럭 하지만 안하겠다는 거죠.

    과연 저의 인터넷 중독이 치료될 수 있을까요? (업무가 웹 기획 및 운영인데…)

    아마 아이디어를 메모로 적어놨다가 주말에 왕창 올리는 블로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밑에는 비밀글로 아이디어들이 쌓여 있군요.

  • 판게아가 한개인건 알겠는데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에 따르면, 어쨌든 옛날에는 대륙이 한개였는데 맨틀의 거대한 힘에 의해서 그것이 찢어져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동의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1개지?

    처음에 두개가 생성될 이유는 없었을까?

    애초에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대륙 하나가 솟아 있는건 약간 찌그러진 모양에 해당한다. 이것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고 본다.

  • 생각의 탄생

    생각의 탄생을 읽었다.

    긴말이 필요 없다. 천재가 되고 싶으면, 즉시 읽고 실천하기 바란다.

    천재가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천재 교과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내가 읽고 싶었고, 정말 쓰고 싶었고, 찾아 헤매이던 책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아이를

    천재로 키우고 싶은 부모

    라면 더더욱 반드시 읽어야 한다.

  • 황금나침반

    황금나침반을 보았다.

    자신의 영혼이라고 하는 데몬이랑 같이 사는 사람들인데, 문제의 발단은 정부에서 애들에게 데몬을 떼어내는 비밀의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데몬을 떼어내는 것은

    어른이 될 수 있기 때문이고, 조금 베이는 정도라고 하고, 어릴 때 시술 받을수록 좋다. 그리고 시술받고나서 그 아이는 혼이 빠진듯 멍한 표정이 된다. 잘못되면 죽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런거 원한적 없다. 다들 병원에서 도망가려고 한다.




    이정도의 묘사 속에서 떠오르는 것 없나?

    바로

    포경수술

    이 떠오른다. 남자라면, 위의 설명이

    포경수술

    의 설명과 같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재미없다는 평이 있지만, 나름 판타스틱하게 세상을 잘 그려내고 있고, 위와 같이 현실을 반영한 영화이기도 하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담아내려고 한 흔적도 좀 보였다. 스타워즈식의 “내가 니 애비다”라는 반전도 넣으려고 했고.

    어쨌건 그냥저냥 볼만한 영화였다. 영화 표값이 아까울뻔 했던 아슬아슬한 영화. 그건 그렇고 다니엘 크레이그랑 니콜 키드먼은 또 커플로 나왔다. 늙지도 않아요 니콜은…


  • 착한일도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자신이 가진 것을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은 나눔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그 즐거운 일을 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가끔, 어쩌면 모든 경우에, 자신이 모든 이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더이상 즐겁지 않을 수 있다.

    서울역에서 길거리의 노숙자가 손을 벌리고 엎드려 있길래 주머니를 뒤져서 500원을 바구니에 넣고 나면, 10미터를 못가서 다른 노숙자가 일주일을 굶었다며 빵이라도 사먹게 1000원만 달라고 한다. 다시 지갑을 열어서 1000원을 주고 나면 그 노숙자는 잠깐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가서 똑같은 얘기를 또 하고 있다. 나는 뻔히 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지만, 그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이런식으로 하루에 50건만 하면 5만원. 대략 하루 일당이다. 이런걸 몇년째 지켜보고 있다보면, 어째서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려 하지 않고 계속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걸까? 내가 도와주기 때문에 그것이 만성화 되어서 일할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돈을 주지 않게 된다. 돈을 주지 않는다고 그 노숙자들이 나를 그냥 지나쳐 가지는 않는다. 눈길이라도 살짝 스치면 바로 다가와서 손을 한번 벌려보고 간다. 그럴때마다 어쨌든 내 마음은 참 힘들다.

    이런 논리가 있었다. 예전에 아프가니스탄에 봉사하러 간 사람들이 납치되었을 때, 한국에도 못먹고 못사는 사람 많은데 굳이 외국에 험한데 가서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 한 사람의 능력, 한 단체의 능력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도와 “빛”을 주면 그 도움을 받지 못하는 “그림자”가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기왕 돕는다면 우리 주변의 사람을 도우면 더 낫지 않은가.

    예를들어, 내 수중에 적당히 기부할 곳을 찾는 100만원의 현금이 있다고 하자. 어딘가에 기부해서 좋은 일에 쓰이기를 바라는데, 어디다 기부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난치병 환자에게 줄 수도 있고, 어딘가 돈이 없어 학비도 책을 살 돈도 없는 가난한 학생에게 줄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에게 주면 환자가 울고, 환자에게 주면 학생이 울게 된다. 그리고 누가 더 돈이 필요한가는 전적으로 돈을 갖고 있는 내가 결정하게 된다. 내가 어느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죽거나, 젊은이의 꿈이 좌절된다. 물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이 있고, 각각 자신이 정한 가치관에 따라 자신이 하고싶은 선행을 하고 있으므로 혜택은 그럭저럭 다양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이렇게 전체를 보지 않고 내 개인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나의 선택에 의해 돕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미안하게 될 수 있다. 물론 그런 사정이 있을 때 선택되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고맙다”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고마워하는 것과 내가 아쉬운 것은 다른 문제인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이 없을 경우 이런 문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남을 돕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쪽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남들 신경쓸 여유가 없는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본다.

    내 생각에, 착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조금은 양심을 검게 물들일 필요가 있다. 나의 한계에 부딪쳐서 돕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돕겠거니 하고 그냥 눈감고 귀막고 넘어가야 한다.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고 이쪽 저쪽 모두 도와서 잘되게 만들려고 하면 어느쪽도 성공하지 못하고 자신마저 버릴 수가 있다. 자신이 어디까지 도울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딱 그만큼만을 실천하는 것이 성공적으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길이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단발성 도움은 없는게 더 낫다. 희망을 가졌다가 포기하는 것은 절망보다 나쁘다.

    물론 이전 글에서 논의했듯이,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우선 상상해보고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능력을 확장해 나가면서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처음부터 세상 전체를 구원하려들지 말기를.

    글이 조금 냉소적으로 흘러갔다. 최근 개인적인 경험으로, 희망을 줬다가 뺏는 것이 절망보다 더욱 사람을 좌절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 돈키호테의 기질이 보이는 친구

    Askhow에서 이런 답이 올라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흠…

    …바닷물을?

    (자네가 혹시 모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