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snowall

  • 결과보다는 과정?

    2012. 3. 5.

    사람들은 흔히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시험 성적보다는 시험 공부를 하면서 얻은 지식이 더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에 상관 없이 결국은 점수로 평가받는다.

    어차피 점수로, 수치로, 결과로 평가할 거면서 왜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그렇게 많이들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실패한 인생은 아무리 열심히 살았어도 용서해주지 않는 세상인데.

    그런 사례를 보면서, 과정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열심히 했지만 실패한 인생과 대충 하다보니 성공한 인생 중, 고를 수 있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물론 노력과 성공이 언제나 인과적으로 어울리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에게 도전하라고 그렇게 장려하면서, 뭐더라 –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던가, 실패해도 괜찮은게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비싼 강연료를 주면서 성공담을 듣고 싶어하는데,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흔히 도전하지 않는 것 보다는 도전했으나 실패한 것이 더 낫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공이 아니면 다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도전정신을 그렇게 찬양하면서 왜 실패를 미워하는가. 무한도전도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실패했으면 과연 그 제작진들은
    지금과 같은 명성이 있었을까.

    오히려 실패한 사례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면,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에게 비싼 강연료를 주고 실패 후기를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결과는 중요하다.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애초에 “왜 성공해야 하는가?”를 따져보지 않으면 성공 자체에 휩쓸려서 결과만을 보게 된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 보다 더 나쁜 것은, 수단을 위해 목적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

    2012. 6. 1. 추가

    수단을 위해 목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이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면 목적이 뭐든지간에 일단 일을 벌린다는 것이고, 이 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면 아무리 좋은 목적의 일이라도 시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는 말이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다. 칼을 뽑았건 아니건간에 썰어야 할 것이 있으면 썰고, 썰어야 할 것이 없으면 잘 갖고 있으면 되는데 뽑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뭔가를 썰어야 한다는 것은 수단을 위해 목적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 이건 뭐…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205300703531140&ext=na



    장쯔이가 성상납을 했건 안했건간에 보시라이를 종북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섹시한 제목으로 눈길을 끌어보려는 개수작에 불과하다.

    물론 종북세력은 척결해야 하는 대상일지도 모른다. 부패 정치인인 보시라이도 척결해야 하는 대상일 것이다. 하지만 똑같이 척결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해서 저렇게 연관시키는 인간은 대체 머릿속의 논리 회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건가.



    내 생각엔 네이버에서 “보시라이”와 “종북”을 검색하면 나오는 저 기사 요약을 “대충” 보고서 기사 소제목을 저렇게 쓴 것 아닐까 싶다.

  • 인터페이스 메트릭

    윈도우즈를 쓰다 보면 무선랜과 유선랜을 둘 다 사용할 경우에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경우가 있다.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무선랜과 유선랜 둘 다 사용 가능한 경우, 윈도우즈는 무선랜을 우선하여 인터넷에 연결한다.

    2. 그런데 무선랜 신호가 매우 약해서 연결은 되어 있지만 인터넷을 쓸 수는 없는 경우에.

    3. 윈도우즈는 유선랜이 훨씬 빠른데도 불구하고 무선랜 우선 정책에 의거하여, 무선랜이 완전히 끊길 때 까지 무선랜으로만 인터넷 접속을 시도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터페이스 메트릭”이라는 개념을 찾아보았다.

    이것은 접속 장치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수치인데, 다음의 웹 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support.microsoft.com/kb/299540/ko

    흥미로운 것은, 저속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장비에 높은 수치를 부여하여 우선순위를 낮추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게 왜 문제냐하면, 컴퓨터와 무선랜 공유기 사이의 연결은 빠른데, 무선랜 공유기에서 외부로 나가는 회선이 느린 경우, 매우 빠른 유선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매우 느리게 접속된다는 점이 문제이다.

    아무튼, 그래서 네트워크 카드의 메트릭을 유선랜이 더 작은 수치가 되도록 강제로 조정하였는데, 그래도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래서 “게이트웨이”의 메트릭을 가장 작은 수치인 1로 설정하였더니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A32&newsid=02482966599533840&DCD=A01503&OutLnkChk=Y

    간만에 그럴듯한 법이 나타났다.

    경제사범의 집행유예 선고를 막는 법이다.

    과연 통과될 것인가.

  • 과학과 공학

    난 언제나 “과학자”가 되기를 원했다. 내가 “물리학 전공”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로보트 태권V”를 만들어 일본을 무찌르자고 한다. 그건 공대생에게 이야기해 주세요. 아니면 국방부에 건의하거나.

    이것은 아마 했던 이야기의 재탕일 것이다. 그만큼 가슴속에 깊이 박혀있다는 뜻이겠지. 이 글이 이해가 안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넘어가자.

    입으로 실험하는 사람들을 매우 싫어하는, 그런 분이 있다. 구체적인건 하나도 모르면서 “이 실험은 이렇게 하면 되는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놈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이 장비를 사용할 때 이것과 저것을 그렇게 연결해서 요렇게 하면 이게 되는데, 거기서 저 부분을 실수하면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는 내용을 모르는 인간과는 말을 섞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실 나도 그런 자세한 내용을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종류의 인간인데. 그분은 나를 오해하고 있다. 난 그런 복잡한 것들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고 내가 관심있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그런 것들은 모두 적절한 사용설명서를 작성해놓고 잊고 싶다. 그런 자세한 내용을 내가 알고 있는건 그게 내 “일”이라서 알고 있는 것이다. 이건 “기술자”라든가 “전문가”의 일이지 “과학자”의 일은 아니다. 실험을 설계하고 기술자에게 넘겼으면 기술자가 된다/안된다 판단하여 답을 주고 된다고 하면 실험을 진행하고, 안된다고 하면 설계를 수정하면 된다.

    그걸 모두 직접 하는걸 두고 “나는 다 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전업 과학자로서는 좋지 않은 태도이다. 실험 장치와 검출기의 어떤 측면이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술자가 해야 할 일까지 다 해버리면 그대는 과학자인가 기술자인가. 또한, 그러면서 “나는 바쁘다”고 다른 일들을 놓치고 있다면 그건 더 나쁘다.

    그러니 난 그냥 이렇게 저렇게 실험을 하라고 시켜놓고 결과를 받아서 분석하는, 그런 과학자가 되고 싶다.

    왜 다들 “과학자”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걸까. 가수, 화가, 소설가, 공무원, 의사, 이런것들이랑 똑같은 직업의 하나이다. 기수가 자신의 앨범을 녹음하는데 녹음 장비와 편집 장비를 잘 다뤄서 혼자서 다 할 수 있으면, 그건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다. 자신의 피와 땀이 녹아들어 혼이 담긴 작품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가수가 엔지니어를 고용해놓고서 자기가 녹음과 편집을 다 해버리면 그만한 뻘짓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건 엔지니어를 무시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과학자도 하나의 직업이다. 그러므로 과학자인 사람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여 과학을 잘 연구하면 된다. 자신이 그 밖의 것을 잘 안다고 해서 그 밖의 것을 잘 안다는 사실로 좋은 평가를 받기를 기대하면 안된다. 그 밖의 것을 잘 아는 것은 자신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 좋은 연구 결과로 평가받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답답하다.

  • 아기가 타고 있어요

    운전하다보면, 자동차 뒷유리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고 붙여놓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아기 태우고 있다면서 왜 이리 난폭운전들을 하시나요…

    급가속, 급제동에 깜빡이도 안켜고 들어오고 내 뒤에 있으면 천천히 가속한다고 앞질러 간다. 물론 수 km를 지나친 후에도 내 바로 앞 정도에 있을 뿐이지만.

    설마 그 아기가 운전자 당신은 아니겠지.

  • 디아블로3

    여기저기서 디아블로 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고고히 손도 안대고 있는 1인이 되었다. 일단은 시간이 없다는 것도 큰 이유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하루에 30분만 하자는데, 그 시간이 있으면 30분 더 자거나 30분 더 책을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전에 혼자서 하던 이야기 기반의 RPG게임은 소설을 읽는 듯 이야기에 몰입되는 느낌이 있어서 좋았는데, 최근에 나오고 있는 게임들은 대체로 퀘스트와 아이템이 기반이다. 퀘스트는 뭐 이야기의 일부니까 그렇다 쳐도, 아이템 조합이나 스킬 포인트 찍는건 정말 못봐주겠다.

    “법사 키우려면 A스킬에 B아이템을 어떤 렙에서 찍어야 하나요?”

    “법대 다니려면 A학원에 B수업을 몇학년때부터 다녀야 하나요?”

    두 질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퀘스트라는 것도 이야기로 봐줄 수는 있는데, 주어지는 임무가 대부분 지역의 이곳과 저곳을 다니면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아이템을 얻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걸 볼 때마다, 도대체 직장에서 매일같이 하고 있는 삽질을 왜 온라인에서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최근의 MMORPG게임은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다.

    온라인에서 수백만의 적군을 때려잡고, 수천의 악마를 잡아도 현실은 여전히 지옥이다. 분명한 것은, 게임 속 캐릭터는 죽어도 다시 부활하지만 이 몸은 그럴 수 없다는 것. 그러니 더욱 스릴 넘치는 쪽은 현실이다. 어떻게 봐도 현실이다.

  • “내 아이 인생설계가 아이를 망친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522153659§ion=03&t1=n

    간만에 읽은 좋은 기사글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 이런저런것들

    공자님 말씀에, 노력하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고 했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노력한다면 뭐든 잘할 수 있겠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과 즐기는 것과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같은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파이썬과 VB와 C를 잘하려고 노력하고, 잘 하기도 하지만, 정작 배우고 싶은건 Haskell과 Perl이다. 나는 일본어를 잘하고 싶지만 정작 노력하는건 영어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싶은데 할일은 쌓여있다. 그래서 연애는 잘하고 싶고 좋아하고 즐길 수 있지만 할수는 없군.

  • 먼나라 이웃나라 한국편

    이원복 교수의 명저 “먼나라 이웃나라”시리즈 중 “한국편”을 읽었다.

    한국인이 쓴 책 답지 않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민족성 등 여러가지 관점에서 여러가지 관점을 다루고 있다. 이런 느낌으로 교과서가 서술되어야 괜찮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