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배우는 양자컴퓨터

(일러두기)이 리뷰는 출판사 영진닷컴으로부터 책을 무료로 제공받아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의 유령이 업계를 떠돌고 있다. 양자컴퓨터라는 유령이.

유명한 공산당선언의 도입부를 따라해보았다. 양자컴퓨터는 우리에게 마치 유령과 같은 개념이다. 일단, 양자라는 것 자체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어려운 개념이고, 양자역학 수업을 들어본 물리학 전공자에게도 양자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하기도 어려운 개념이다. 그리고 그 양자라는 것을 이용한 컴퓨터는 또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울까? 그런 어려운 개념을 과연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그 어려운 일을 어느정도 완수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특징이라면, 저자가 물리학 전공자가 아니다. 공과대학 출신으로, 금융계에서 일하다가 필요에 의해서 양자컴퓨터를 공부하게 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완전히 비전공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책을 썼다는 것이 느껴진다. 제일 첫 챕터인 ‘양자컴퓨터로 인한 사회 변화’에서는 양자역학에 관한 설명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양자컴퓨터가 어떤 파급력을 갖고 있는지, 왜 주목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하면서 내용이 어렵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두번째 챕터에서야 양자가 무엇인지, 양자컴퓨터가 양자의 어떤 성질을 이용한 것인지 소개하기 시작한다. 세번째 챕터와 네번째 챕터는 흔히 보는(?) 양자컴퓨터 교재에 나오는 이야기들인 양자 게이트와 양자 알고리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책에서 보이는 두드러지는 특징은, 내용의 실전성이다. 다섯번째 챕터에서 양자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설명한 후, 여섯번째와 일곱번째 챕터에서 실제로 파이썬을 이용해서 양자컴퓨터를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예제를 보여준다. 우리가 고전적인 컴퓨터에서 반도체 회로의 작동 원리를 깊이있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이용해서 계산도 하고 게임도 하듯이, 양자컴퓨터 역시 깊이있는 이해가 없어도 그걸 이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시말해서, 양자역학 그 자체를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도구로써의 양자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은 어느정도 가능한 일인데, 그렇게 하려면 손에 만질 수 있는 도구로 실습해보는 것이 제일 좋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양자컴퓨터의 작동 방식과 코딩 방법을 체험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어서 일단 체험하고, 나중에 이해하는 방식의 학습이 가능하다.

마지막 여덟번째 챕터는, 저자 본인이 금융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 양자컴퓨터를 어떤 분야에 도입해서 활용할 수 있는지 소개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제시된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쪽 업계에 좋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여덟개의 챕터로 나눠져 있기도 하지만, 각 챕터는 레슨이라는 순서로 구분되어 있기도 하다. 책 전체적으로 58개의 레슨이 있고, 각 레슨에서는 하나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서 설명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잘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레슨의 순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일단 쉬운 개념이나 도입해야 하는 이유 등을 먼저 설명하고, 이후에 좀 더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는 순서다. 이런 순서가 학술적 정합성을 중시하는 관련 전공 연구자들에게는 좀 어색할 수 있는데, 쉬운 개념부터 받아들이면서 점층적으로 어려운 것을 배워 나간다는 교육 목적에서는 적절해 보인다.

전반적으로 보자면, 이 책은 내가 접했던 여러 양자컴퓨터 전공서, 개론서, 입문서 중에서 매우 쉬운 편에 속하는 책이다. 양자컴퓨터라는 말을 들어보긴 했는데 아무도 안 가르쳐준다거나,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봐도 뜬구름 잡는 설명만 있다거나 해서 좌절한 사람들에게 양자컴퓨터 공부의 시작점과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러다보니 물리학 전공자 수준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너무 쉬운 편이며, 아마 이미 아는 개념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구경하는 정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사실 글꼴이었다. 글꼴이… 뭔가 눈에 잘 안들어오는 느낌이다. 그건 주관적인 부분이기도 하고, 출판사에서 정할 일이라서 리뷰에 대놓고 쓸 얘기는 아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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