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천체물리학….?

누군가 이메일로 조언을 구해왔다.

안녕하세요!:D

우선 바쁜 시간 내어 상담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공과대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나이는 24살이구요.

저는 약 6개월 전부터 대학원 진학을 고려 중에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제가 공부했던 전공과 다른 분야로의 진학을 희망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종적으로 천체물리학 분야로 진출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하고 확신할 수 없는 정보들에 물리 전공 석사를 해야 할 지, 천문학 전공으로 해야 할 지조차 제대로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남기환 님의 블로그를 들리게 되었고,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주신 글들을 보면서 현실적이고 유익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에게도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결해 주실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1. 천체물리를 목표로 물리학 석사를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가요?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찾던 중 천체 물리학 쪽으로 가려면 대학원을 천문학으로 가야 한다, 물리학으로 가야 한다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2. 어떤 공부가 필요한가요?

일단은 물리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현재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일반 물리학과 영어공부를 하고 있구요. 일반 물리학의 경우 대학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만, 누가 물어보면 잘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은 못 됩니다. 다시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다른 공부를 해야 할까요?

3. 해주고 싶으신 충고나 조언 있으신가요?

궁금한 게 정말 많았는데 막상 적고 나니 질문들이 바보 같고 간단하네요. 제가 봐도 지금 제 모습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벌벌 떠는 한심한 예비졸업생 같은데, 하물며 기환 님인들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저에게 지금 순간은 지나가 버리면 다신 이루지 못할 꿈 같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도전도 안 해보고 포기하면 후회할 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다 잘될 거라는 둥 의미 없는 응원 대신 현실적이고 뼈 아픈 조언을 남기신 기환 님의 글들은 오히려 제게 정신 차리고 의욕을 불타오르게 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글솜씨가 없어 읽는 동안 힘드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1.
가장 중요한건 본인이 하고 싶은게 천체물리학인지 천문학인지 정하는 거예요. 공부하다가 나중에 바뀌는건 뭐 어쩔 수 없는데, 일단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은 지금 이 시점에서 하고싶은게 도대체 어느쪽인지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천체물리학은 “물리학”에 방점이 찍혀 있고, 물리학 연구를 하는데 그 대상이 천체인 겁니다. 물리학은 고전역학, 전자기학, 양자역학, 통계역학 같은 몇가지 도구들이 있고, 이것들을 천체에 적용해서 천체의 특성을 알아내게 되죠. 천문학은 우주를 연구합니다. 우주를 관찰하는 것도 있고, 관찰 결과를 해석하기도 하고, 분광분석을 하기도 하고, 시뮬레이션을 하기도 하죠. 여기에 물리학은 우주를 해석하는데 사용하는 도구가 되죠. 물론 모든 이론이 하나로 통한다고 하듯이, 이것도 궁극의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르면 천체물리를 하든 천문학을 하든 거기서 거기겠지만, 일단 입문하는 단계에서 어느 분야로 시작하느냐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동네 뒷산도 못 올라가는데 굳이 에베레스트를 절벽부터 공략할 필요는 없잖아요.

“천체물리”를 목표로 “물리학 석사”를 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 맞습니다. 문제는 본인이 하고 싶은게 “천체물리학”인가 “천문학”인가 잘 고르는 거예요. 그리고 우주와 천체를 연구할 때에도 분야가 많습니다. 행성, 소행성, 위성, 항성, 은하, 퀘이사, 초신성, 중성자별, 블랙홀, 그리고 우주 전체 등등. 전반적으로 학습은 하겠지만, 연구는 그 중 하나를 정해서 깊이있게 파게 되고요.

하고싶은게 도대체 뭔지 정하세요. 음, 대학원 가고 나서 바뀔 수도 있는데, 가기 전에 주제가 분명하지 않으면 대체로 가고 나서 후회해요.관심있는 주제나 연구 분야가 연구하다가 바뀌는 건 상관 없는데, 일단 대학원에 가기 전에는 분명히 정하고 가야 합니다. 물론 대충 대학원 가서 대충 연구분야 정하고 대충 연구하다가 대충 논문쓰고 대충 졸업해서 대충 취업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유명 연구소의 소장이 되어 있었다 뭐 그런 신나는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게 본인에게 일어날 일이라고 확신하면 안되는 거니까요.

2.
공대라고 하셨는데 기계과, 전자과, 화공과라면 각각 고전역학, 전자기학, 열/통계역학은 좀 아실 것 같네요. 컴공이라면 컴퓨터 시뮬레이션 하는데 조금 유리할 수 있을 거고요. 그런데 일반물리학 정도에서 남에게 설명할 수 없을 수준이면 상위권 대학은 면접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합격한다고 해도 들어가서 수업 따라가기에 벅찰거예요. 이쪽 질문은 일단 앞에서 뭐 전공할지 정한 다음에 생각하죠.

영어공부는 매우 중요합니다. 연구하려면 읽기가 되어야 하고, 논문쓰려면 쓰기가 되어야 하고, 학회가서 발표하려면 말하기와 듣기가 되어야겠죠. 한국에서 하는 학회만 다닐 거 아니라면 영어공부는 열심히 해 두세요. 객관적 지표로 말한다면 토플 IBT로 80점 이상, 100점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지금 못한다고 연구를 못하는 건 아닌데,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되어야겠죠.

3.
대학원 가면 대략 5년에서 길면 10년정도, 남들보다 돈 못 버는 상태로 살게 됩니다. 그 이후에 박사학위 갖고 취업을 잘 해도 친구들이 10년전에 받던 월급을 그제서야 받을 테니 별로 보람도 없고요. 그때쯤이면 다른 친구는 어딘가의 대기업 중소기업에서 대리, 과장 달고 돈 많이 벌고 있을 거예요. 뭘 해도 본업이 백수가 아닌 이상 대학원생보다는 많이 벌어요. 물론 대학원생의 삶이라는게 그렇다고 굶어 죽을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기는 한데, 어쨌든 절대로 넉넉하게는 못 살아요. 대학원에서 공부하는게 그 이상의 가치를 준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도전하세요. 공부와 연구에 미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원에 가게 되면 자기가 한게 얼마나 미친 짓이었는지 알게 될 뿐이에요. 저를 포함해서 많은 후배들이 이런걸 모르고 대학원에 와서 당황하고 힘들어 해서 해주는 얘기예요. 물론 알고 와도 당황스럽고 뭘 예상해도 그거보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번지점프 할 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누가 밀어버리는 거랑 결심하고 직접 뛰어내리는 거랑은 좀 다르잖아요.

연구라는건 운과, 노력과, 재능이 모두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음, 그중 뭐 하나가 부족하다고 절대 안되는 건 아니고, 다른걸로 채울 수도 있긴 하죠 노력이 없어도 운이 엄청 좋으면 노벨상 받을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아무리 노력했어도 그냥 순수하게 운이 없어서 망할 수도 있고요. 아무리 재능과 노력이 있어도 지도교수 잘못 만나서 커리어 꼬이면 그건 그거대로 인생에서 헤쳐 나가야 할 악몽일 뿐이죠. 그러니까, 10년쯤 후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괜찮다는 달관의 자세로 진학할 필요가 있어요. 상상 가능한 가장 좋은 경우와 가장 나쁜 경우 사이에 있는 수만가지의 결과 중 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몰라요.

4.
한국에서 대학원을 갈지, 외국 유학을 노릴지도 고려해 보세요. 우리나라에 천문학, 천체물리학 전공이 없는건 아닌데 해외에 비해서는 확실히 지원이나 인프라가 적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세종대 천문학과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뭐 그렇게 막 힘들기만 한건 아니긴 한데, 아무튼 그렇다는 거죠.

저한테만 조언을 받지 말고, 가능한 다양한,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자료조사를 하세요. 물론 결정은 누구의 것도 아닌 본인이 하고, 그에 따르는 결과도 받아들여야겠죠. 누가 어떻다더라 하는 말 듣고 진로 선택하면 대체로 망해요. 로또라는게 남의 말 듣고 사든 내 맘대로 골라서 사든 어차피 당첨 안 될 텐데 남의 말 듣고 사면 왠지 돈이 아깝잖아요.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후회는 10년뒤의 자신에게 떠넘기고, 결정을 지금 잘 하면 됩니다. 그때가서 후회하면 뭐 어쩔 겁니까. 자기가 자신을 잘 알면 그때 가서 후회할 때 어떻게 할지도 잘 알겠죠. 대학원 진학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데, 원서 접수는 마감시간이 있으니까 그 전에 결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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