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과 5차원 우주론

모 선배님께서 기증하셔서 얻게 된 “빅뱅과 5차원 우주 창조론(권진혁 저)”을 읽어보았다. 일단 약력을 보면 서울대에서 “게이지 이론”으로 학사를 받고, 카이스트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는데, 고출력 레이저를 이용한 비선형 광학을 개척했다는 걸로 봐서는 “그” 연구실 출신인 것 같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일단 제목을 잘못 붙인 책이다. 빅뱅과 5차원 우주 창조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제목을 붙여놨는데, 책 내용의 대부분은 “그냥 우주 창조론”에 관한 이야기이다. 5차원 얘기는 리사 랜들의 유명한 교양서 “숨겨진 우주”라는 책을 보고 인용한 것 같다. 물리학 박사학위까지 받으신 분이 교양서 보고 인용하는 걸로 봐서는 이 사람은 초끈이론이나 그를 비롯한 우주론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닫고 볼 수 있다. 그냥 나랑 비슷한 수준이랄까?

뵈르너 교수가 “창조자 없는 창조”라는 모순적인 말로(96쪽) 자연주의적 기원론을 버리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문제는 178쪽에서 본인도 모순적인 창조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써있다. “창조과학은 … 그 과학적 증거들에 오류나 한계가 밝혀지면 성경의 권위가 훼손될 수 있다”, “과연 성경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과학적 증거나 지지가 필요한가”, “성경의 권위는 성경 그 자체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절대 잊어버리면 안된다.” 아니 이보시오, 과학이란 “뭔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이것과 저것 중 무엇이 사실인가”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학문이다. 자, 그런데 성경은 “성경 그 자체로 권위가 있고 진리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창조론은 과학적으로도 옳다”고 말하고 싶으면 “창조론이 맞나 틀리나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건데, 그거는 곧 창조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은 물론 창조론이 틀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겠지만, 글쎄. 성경의 권위를 그렇게 높여서 보는 사람이 창조론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빅뱅 이론과 여러가지 우주론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그걸 풀 수 없으므로 창조론이 맞다고 하는데, 그런 헛점은 창조론에도 있고, 심지어 창조론에 더 많은 헛점이 있다. 초끈이론이나 다중우주론이 검증할 수 없다면, 창조론은 그보다 더 검증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책 저자가 물리학 전공자라서 우주론으로써의 창조론은 뭐 어떻게든 전문가라고 할 수 있어도,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이론으로써의 창조론은 절대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 그럴거면 생물학 박사랑 공저를 하든가 했었어야 한다. 물리학 전공자가 생물학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뭐 물리 전공했다고 생물학을 아예 모를거라고 하는 건 편견이지만, 관련 경력이나 논문 한줄 없는 사람이 진화론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결국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만 갖고 썰을 풀고 있다는 뜻이다.

232쪽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속에는 인류가 쌓고 발전시켜온 모든 노력의 정당성이 부여되고 … 설계의 증거들이 타당한 논리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유리한 것은 하나님인 것이 분명하다”라고 하고 있다. 아니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 노력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어디가 어떻게 “논리적”인가? 논리적이라는 말은 “P이면 Q이다. Q이면 R이다. 따라서 P이면 R이다”와 같은 주장에 사용하는 것이다. “P이기 위한 노력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Q이어야 한다. Q가 되면 R이 논리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라는 진술은 “논리적”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148쪽에서 연대측정의 문제를 들어서 빅뱅이론과 현대우주론을 반박하고 있다. “2세대 별들의 시대에…생성될… 우라늄의 납의 함량은 매우 불확실함으로 태양과 지구의 나이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자, 그럼 창조론이 맞다고 합시다. 태양과 지구의 나이는 어떻게 됩니까? 6천년? 1만년? 여러 모순되는 관측 결과를 설명하지 못하므로 현대우주론이 틀렸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럼 성경은 그 결과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가? 아니, 심지어 창조론자들 사이에서도 우주의 나이와 지구의 나이에 대한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창조론”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이론 중에서 어떤 창조론이 진리인가? 적어도 현대 우주론은 우주의 나이에 대해서는 대략 137억년, 태양의 나이는 50억년,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이라는 학술적인 합의는 존재하며 오차 범위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관측결과들이 존재한다.

우연에 의한 생명체 진화가 불가능하다고 하길래 나도 그럼 우연에 의해서는 성경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해 보겠다. 만약 전 세계에 있는 성경이 모두 사라졌다고 치자. 아니, 성경만 사라지면 불공평하니까 모든 책과 기록매체가 싹 다 사라졌다고 치자. 가능하면 인류도 멸종했다고 치자. 그리고 다시 인류 비스무리한 생명체가 창조되었든 진화했든 다시 나타났다고 치자. 이제 발견해보자. 성경과 현대 우주론 중 무엇이 “현재 이대로” 다시 발견될까? 답은 각자 생각해 보기를…

2 thoughts on “빅뱅과 5차원 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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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가 지금 ‘과학기술과 언론 보도’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분이 학창시절에 과학철학에 조금 관심이 있으셨는지 포퍼나 쿤같은 책들을 읽었던 경험을 가지고 언론 보도의 과학화를 주장하시는 기염을 토하고 있어서, 황당함이라는 즐거움으로 읽고 있습니다. ㅋㅋ

    이런 분들 여기저기 많이 계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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