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낫는다

마도서 리뷰를 하다보면 여러 분야의 책들을 보게 되는데, 사실 물리학이나 철학 계열의 마도서인 경우 실생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유쾌하게 웃으면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생물학이나 의학 관련 계열인 경우,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사람의 목숨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아프면 낫는다(공동철 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발전소, 석유화학 관련 업계에서 수십년간 일한 저자가 의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이 책에 나온 이야기가 설령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믿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픈건 질병을 낫게하는 힘이니까, 아프면 좋은거다”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데, 책의 내용 중에 보면 면역이 생기기 위해서 약하게 아프고 나면 다시 아프지 않는다는 부분이 있다. 그건 좋은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병을 앓을 때의 아픔의 정도가 면역성의 보유 기간에 비례하는 듯 하다”(208쪽) 라고 써 있다. 명백하게 틀린 주장이다. 가령, 많은 종류의 예방주사는 주사 자체의 통증은 있지만 예방주사를 맞고 나서 아프다거나 하지는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서 수십년, 또는 평생의 면역을 보유할 수 있다. 이 책은 이 부분을 쓰면서 자기모순적인 서술을 하고 있는데, 책 전반적으로 서양의학에 대해 매우 불신하고 있으면서 면역에 관해서는 서양 의학의 기술과 지식을 믿는 것 같은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병이 마음에서 오는 것이니 마음이 편안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장육부와 감정의 대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간은 분노, 심장은 기쁨, 위장은 그리움, 폐는 슬픔, 대충 이런식이다. 그럼 슬프면 폐암 걸리고, 너무 기쁘면 심장병에 걸리는가? 이에 대해서 더 할 말이 없다. 물론 스트레스는 실제로 신체에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하고,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병의 근원을 마음에서 찾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관점이다. 독감에 걸렸을 때 원인을 심신의 평안이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독감에 걸린 사람들은 모두 심신이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

그 외에도 책 내용 전반적으로 동양의학에 관한 찬양, 자연치유, 면역요법, 동종요법 등 대체의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인간 신체의 재생 가능성에 대해서만 근거자료가 있는데, 저자 본인이 번역한 ‘생명과 전기(로버트 베커 저)’라는 책 단 한권이다.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도 인용하고 있긴 한데 이건 근거라고 보기엔 너무 빈약하고. 참고로 ‘생명과 전기’는 나도 읽어봤는데 도룡뇽의 신체 복구 기전에 대해 설명이 되어 있긴 한데, 교양서적이기도 하고, 너무 행복회로를 돌린 책이라서 재밌긴 하지만 과학적으로 좋은 책은 아니다.

서양에서 유래한 현대 의학이 실제 환자들의 고통을 깔끔히 없애주지 못하고, 모든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동양 의학, 또는 대체 의학이 어쩌면 그런 불치병, 난치병 환자들에게 실제로 유효한 치료방법을 제공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별로 좋은 책이 아니다. 본인이 열심히 수련과 운동을 한 결과 갖고 있던 어떤 병이 나았다고 하는 본인의 경험에 기반한 설명은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 되지 못한다. 또한, 암 환자들이나 그 외 다른 난치병, 불치병 환자들에게 ‘자연 치료 법을 적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그 환자들에게 오히려 헛된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좋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의사가 아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질병이 치료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치료 시기가 늦거나, 치료 방법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수많은 이유로 환자들은 고통받고 생명을 잃고 있다. 환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병이 낫기를 바라며, 그들을 담당한 의사들은 그 누구보다도 환자를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의학에 대해 의사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근거도 없고 효과도 불확실한 치료법을 적용하지 못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의사에 대한 모독이고, 살고자 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무례한 것이다.

의학이 다른 자연과학 분야와 구분되는 독특한 특징이라면, 실험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과학은 실험이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행위가 가능하다. 통제변인과 종속변인을 바꿔가면서 결론을 얻기에 충분한 정도로 반복성 있는 실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의학은, 그 대상이 생명이고, 특히 그중에서도 인간의 생명이라는 점 때문에 실험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암 치료법을 시험하기 위해서 통제군과 대조군을 놓고, 새로 개발된 항암제에 대해 어느 쪽이 더 많이 죽는지 조사하는 실험을 한다면, 항암제의 효과는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실험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자연치료, 동종요법 같은 것들은 정당화 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다가 죽은 사람의 생명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 책 저자는 그 책임을 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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