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Dr. Y. J. Shin,

복잡계에서 말하는 창발이란 단순한 구조와 기능을 가진 요소들이 아주 많이 모이게 되면, 그 단순한 기능과 그로부터 생각해 볼 만한 당연한 추가기능보다 더 복잡한 기능이나 구조가 나타난다는 개념입니다. 레고를 예를 들어보면, 레고 블록은 아주 간단한 규격의 조각들이고 하나하나는 다른 블록에 달라붙거나, 사람의 발을 공격하는, 두가지의 매우 단순한 기능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걸 잘 조립하게 되면 우주선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들고 로봇도 만들고 별걸 다 만들 수 있죠. 만약 레고 블록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객체였다면 누가 조립해주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창발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레고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므로 레고로 뭔가 창발적인 걸 하려면 사람이나 다른 존재들이 그걸 움직여 줘야 합니다.

글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글을 쓰려면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고 생각해봐야죠. 남의 글을 많이 읽어보고 인용하는건 당연한 겁니다. 문제는, 레고 블록을 그냥 끼워 맞추기만 했다고 로봇이 되는 게 아니듯, 글조각들을 모아다가 하나의 문서 속에 쑤셔넣었다고 책이 되는게 아니죠. 남의 글을 읽었으면 그 글의 의미를 파악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대고, 어떤 공통점과 차이가 있는지 쓰는게 제대로 된 글쓰기입니다.

단어장? 뭐, 단어의 선정과 순서는 ‘많이 쓰는것’ 기준으로 했으니 다른 책, 다른 연구자료들과 유사하거나 같을 수도 있겠죠. 뜻풀이? 단어가 갖고 있는 뜻이야 어차피 거기서 거기니까 똑같을 수도 있을겁니다. 그럼 적어도 ‘이 책은 다른 책이랑 비교할 때 구분되는 특징이 없다’고 해야 하며,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렇게 비평하는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고도 책을 많이 팔고 싶으면 싸게 팔든가, 표지라도 예쁘든가, 아이패드라도 사은품으로 주든가, 그런게 있어야죠. ‘이 책이 좋다’는 입소문을 내서 그 책을 많이 파는건, 최소한 본인이 ‘사기를 치고 있다’는 자각이라도 있어야 하는 겁니다.

자기계발서? 좋아요. 자기계발서도, 인생의 진리가 그렇게 다양하지 않듯, 인생의 도움이 되는 글귀나 구절이 여럿일 이유는 없으니까 다른 책이랑 같은 내용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저자의 주장이 없이 남의 교훈을 갖다 적고, 그 교훈이 왜 유효한지도 다른 책에서 인용하고, 그럼 그건 책 펴낸이에 ‘저자’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편집자’라고 쓰는게 타당합니다.

이 글 내용이 불만이겠죠? 그럼 글을 삭제할게 아니라 이 글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어디가 틀렸는지 자기 논리를 적어보세요. 글을 남에게 보이기 싫으면 삭제하고 제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페메로 보내든가 해보시죠. 그럼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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