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전을 하기 위한 고전역학

물리학을 배워서 구체적으로 무엇에 써먹을 수 있고, 그걸로 돈을 벌 수 있느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물리학만 갖고서는 한참 부족하다는 대답이 나온다. 뭘 만들려고 해도 공학에 속하는 지식이 필요하고, 잘 팔리도록 예쁘게 만들고 싶으면 산업디자인과 같은 미술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리학을 잘 알고 있으면, 어떤 일들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인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그런 순간들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 안전운전을 하기 위해서 앞 차와의 간격을 충분히 벌려두어야 하는 이유 같은 것들이 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 하나를 생각해 보자. 이 자동차의 앞에,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또 다른 자동차가 한 대 더 있다고 해 보자. 앞 차와의 간격은 100미터이다. 쉽게 생각하기 위해서, 두 자동차의 목적지가 같다고 해 보자. 그럼, 뒤에 있는 차량이 앞에 있는 차량보다 늦게 도착할 것이다. 얼마나 늦게 도착할까? 약 3.6초 정도 늦게 도착한다. 왜냐하면, 시속 100킬로미터는 1초에 27미터 정도 달리는 속력이고, 뒷 차와 앞 차의 간격은 100미터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속 100킬로미터로 꾸준히 달렸다면, 뒷 차는 앞 차보다 대략 3~4초 정도 늦게 도착하는 셈이다. 이 때, 출발시각은 상관 없다.

그럼, 뒷 차가 앞 차에 차를 바싹 붙여서 간격을 10미터로 줄였다고 쳐 보자. 그럼 뒷 차는 앞 차보다 약 0.3초 정도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게 된다. 뭔가 늦는 시간이 10분의 1로 줄었기 때문에,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 같지만 실제로 나타나는 도착시간의 차이는 3초다. 즉, 속도를 일정하게 달리고 있는 한, 앞차와의 간격이 가깝든 멀든 앞 차보다 늦는 정도는 겨우 몇 초 차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재채기만 해도 스쳐 지나가는 3초 차이 때문에 앞 차에 바싹 붙이면서 고속 운전을 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0.001초라도 앞서가야 승리하는 모터스포츠를 운전하는 중이 아닌 이상, 앞차에 자기차가 바싹 붙여서 운전하는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매우 위험하면서 얻게 되는 시간적 이득은 별로 없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차량 통행량이 정속주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꾸준하다면, 앞차와의 간격을 좁게 하든 넓게 하든 도착시간에 큰 차이가 없는 대신에, 좁게 할수록 당신의 목숨은 훨씬 위험해 진다는 뜻이다.

방금 앞의 이야기에서는 앞지르기를 하지 않는 경우를 이야기했는데, 그럼 앞지르기를 하면서 달린다면 어떨까? 앞 차보다 먼저 도착할테니 이번엔 좀 남는 장사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론 이 경우에도 목숨을 건 댓가 치고는 그다지 얻을 이익이 없다.

앞 차와의 간격이 앞서와 마찬가지로 100미터라고 해 보자.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를 추월하기 위해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던 뒷차가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리기 시작했다고 하면, 앞 차와 나란히 서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18초다. 속도 오차를 감안해도 20초정도 걸릴 것이다. 물론 나란히 섰다고 해서 앞지르기가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 차보다 더 앞으로 나가서 차선변경을 해야 하니까, 아마 앞지르기를 끝내는데는 30초에서 40초 정도가 걸릴 것이다. 이제 앞지르기를 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속도를 다시 시속 100킬로미터 정도로 줄여서 더 앞에 있는 차량과 보조를 맞춰야 할 것이다. 이제 생각해보면, 앞지르기를 하기 전에 조금 늦던 것이 앞지르기를 하고 나서는 조금 빨리 도착하기는 하는데, 처음에 말했듯이 그 차이는 약 6초에서 7초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앞지르기를 하기 위해서는 앞 차와의 간격을 줄이는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 동안에는 그만큼 위험해진다. 굳이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

아, 그렇다면 앞지르기를 계속 하면 되지 않는가?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앞지르기를 계속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동차들은 계속해서 도로를 달리고 있으므로, 내 앞에 있는 차를 한 대 앞질러 가더라도, 그 앞에도 차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앞지르기를 한번 할 때마다 사고가 날 확률은 독립적이므로, 전체 주행 시간동안 사고가 한번 날 확률은 앞지르기를 할 때마다 누적된다.

그렇게 열심히 앞지르기를 해서 얼마나 빨리 도착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서울-부산간 고속도로가 450킬로미터정도 되는데, 시속 100킬로미터로 쉬지않고 달리면 4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런데, 앞지르기를 계속 해봐야 시속 120킬로미터 정도로 달린다면 3시간 45분이 걸릴 뿐이다. 이건 한번도 쉬지않고 계속해서 이 속도로 달렸을 때의 이야기이고, 중간에 교통정체구간을 한번이라도 만난다면 어떻게 달려도 결국 4시간 이상 걸리게 된다. 중간에 교통정체구간을 한번도 만나지 않고 갈 수 있을까? 글쎄다…..

자동차가 거의 없는 텅 빈 도로에서는 차가 없어서 앞지르기를 할 수가 없다. 자동차로 가득차 있는 막힌 도로에서는 빈 공간이 없어서 앞지르기를 할 수가 없다. 앞지르기를 계속해서 할 수 있을만큼 적당히 차량이 달리고 있는 도로에서는, 앞지르기를 연속으로 해 봐야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없다.

그러니까, 앞지르기도 앞 차량이 너무 천천히 간다든지 하는 정도의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아니면 안해도 된다. 도착시간에 별다른 차이는 없다.

설마하니 속도는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이동시간으로 나눈 것이라는 산수 얘기를 했을 뿐인데 이해를 못하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하고, 이 글을 읽은 모든 운전자들에게 앞으로도 안전운전을 부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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