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한 책

나중에 다시 읽으려면 뭘 기증했는지도 좀 알아놔야 해서, 일단 퍼왔음.

“나는 누구인가?”는 언젠가 다시 읽어봐야 할 책이긴 하다.

생각대로, 결론


우선, 앞의 ”






생각대로


” 글에 댓글 달아 주신 분들과 조언해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댓글에 일일이 답을 하지 않는 것은 한번에 결론을 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

많은 사람들이 나의 생각을 지지해 주었고, 의외(?)일지 모르겠지만 후배를 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후배의 말을 그냥 무시할만한 것은 아니고 적절히 받아들여서 나의 발전에 사용해야 할 것도 있다.

이런 경우, 가장 쉽게 빠지기 쉬운 함정은 “위선”의 함정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지지하는 것이 그들의 위선적인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그건 불가능하다. 친한 친구, 시니컬한 친구, 이 블로그에 거의 처음 온 손님, 블로거로만 알고 지낸 손님, 그럭저럭 친하게 지내는 친구 등등 (댓글 및 오프라인 상담 포함) 아무 연관성 없는 개개인이 모두 위선적으로 나를 지지할 수는 없다. 어쩌다 몇명은 모를까, 그들 모두가 위선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난 누구에게도 아첨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난 아무런 권력을 갖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생각해 볼 점은, 내가 친구를 가려사귀었기 때문에 나를 지지하는 사람만이 내 주변에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없다. 친구라는 것은 어느 한쪽이 친한척 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에게 어느정도의 충실함과 믿음을 제공하지 않으면 친구관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친구를 가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사고방식과 사상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번째로, 나를 비롯해서 나를 지지하는 사람 모두가 틀릴 가능성이 있다. 즉, 나처럼 생각하는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오류에 빠져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가능성이 낮다. 그 이유는, 조언을 해준 사람들의 경험이 대단히 다양하기 때문이다. 친구를 가려사귈 수는 있지만, 내가 친구를 사귈 때 보는 것은 그 친구가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를 볼 뿐이다. 그 친구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학교를 나왔고, 돈을 얼마나 벌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따라서, 내 친구와 조언자들의 경험은 굉장히 다양하다. 그런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토론하여 합의한 것도 아닌 상황인데, 다양한 답이 가능한 문제에 대해서 동일한 결론을 내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즉, 내가 “생각대로” 글에서 작성한 내용이 올바른 방향임을 충분히 믿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완전한 결론은 아니다. 항상 끊임없이 무엇이 올바른지 고민하고,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중에도 올바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고정관념이다.

그런식으로,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어차피, 지금은 이렇게 말해봐야 “넌 어려서 몰라”라는 말을 들을 뿐이니 말이다.

생각대로

어제 대학교 후배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쓸데없이 얘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결국 새벽에 자게 되었다. 그 대화의 요점은, “너 그렇게 살지 마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너”는 snowall이다. (후배 주제에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하는 후배가 누구인지는 내 동기와 선배님들은 알 것이다. 나도 개념은 국끓여먹은 인간이지만 말이다.)

그 후배가 주장하는 것은, 내가 너무 저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멍청하게 살고 있으며, 조금만 신경쓰면 더 편하게 살고 더 확실하게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데 그런것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원 다닐 때 지도교수님이랑 싸운 것도 그렇고, 교수님이 나 말고 다른 학생을 좀 더 밀어줬다는 것도 그렇다. (심지어 그 학생은 다른 유명 대학의 대학원으로 진학한 상태였는데도.)

구구절절히 맞는 말이다. 근데 편하게 살거였으면 굳이 이러고 살 이유가 없다. 그 후배가 아마 고등학교때 나를 봤으면 미친놈이라고 했을 듯 싶다. 그건 내가 서울대나 연세대 또는 고려대 정도의 학교를 충분히 갈 수 있는 실력이었지만,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아쉬움 없이 중앙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했더라도 포기하고 2학기 수시모집 또는 정시에 지원할 수 있었다.) 그때 중앙대를 가기로 선택한 것은 지금도 전혀 후회가 되지 않는다. 내가 중앙대를 가기로 한 것은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해서 과학/수학 이외의 다른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짜증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대학에 합격했는데, 그걸 포기하고 공부를 더 한다고 하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합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난 절대로 배수의 진을 치지 않는다.

그 후배는 나에게 어떻게 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지 매우 자세한 얘기를 해 주었다. 철저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선물이 먹히는 것이고, 뒤가 켕기게 되는 법이라고 얘기를 했다. 나에게 윗사람들에게 양주 선물도 주고, 사모님한테 꽃다발도 보내고, 갖은 아첨을 떨면서, 그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라고 충고했다. 자기는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지도교수라고 해서 그냥 추천서 써주고 마는게 아니라, 학회 가서 세미나 하나를 더 잡아주고, 학교에서 강연에 한번 더 초청해주고, 그런식으로 자기를 이끌어 줄 자기편 하나가 생긴다고 한다. 소위, 배째줄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온갖 것을 다 해야 한다고 조언해 줬다.

결국은 가치관의 차이인데, 난 전혀 그렇게 살 생각이 없다. 3시간동안 붙들고 날 설득한 그 후배한테는 미안하지만, 남들이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 평할 생각은 없지만, 난 그렇게 살고싶지 않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아니, 심지어 난 성공할 생각도 강하지 않다. 물리 생각하기에도 복잡한 머리에, 누구한테 어떻게 말하고 누구의 어떤 기념일을 챙길지까지 생각해야 하나? 이미 17살 때 이후로는, 신경쓰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없는 것들은 철저하게 신경쓰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어쩌면, 나는 “난 깨끗한 놈이야”라는 허세나 오만 같은 것에 빠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 중요한 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앞에서 했던 얘기를 다시 꺼내오자면, 지도교수님이 다른 학생이랑 쓴 논문은 PR E에 실렸다. 이 저널은 입자 물리학 쪽에서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꽤 중요한 저널이다. 그것에 대한 중요 아이디어를 내던 자리에 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나는 졸업논문과 관련된 주제에 집중했고 (교수님도 그렇게 시켰고), 그 학생은 그 주제로 계속 연구를 해서 결국 학부생으로서 PR E에 그 결과를 실었다. 그것도 제1저자로서. 내가 연구하던 주제는 JKPS에 실렸다. JKPS도 괜찮은 저널이지만 PR E보다는 떨어지는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한다. 난 그 논문에 제2저자로 실렸다. 후배의 말에 의하면, 내가 교수님에게 잘보였다면 그 주제가 내 것이 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그건 사실이긴 하다. 당시 난 교수님이랑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입자물리를 포기할까도 심각하게 여러번 고민했었고, 대학원 때려치고 군대로 도망갈까 생각도 하루에 수십번씩 생각했다. 아무튼간에 난 계속 붙어 있었고, 그럭저럭 졸업논문을 완성해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분명한건,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수하고, 잘못하고, 싫어하고, 거부하고, 차단하고, 멀어지려고 노력한 건 사실이다. 그럼 그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일까? 무의식적으로 나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일까?

까놓고 말해서, 내가 서울대를 갔으면, 난 행복했을까?

그 후배 말대로, 윗사람들 똥꼬 빨아주면서 내 뒤좀 잘 봐달라고 얘기하면, 내가 행복할까? 그 후배는 내가 거기서 왜 고민하는지 도저히 이해 못할 것이다. 편하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놔두고 뭐하러 괜히 고생하는지 평생 얘기해줘도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 후배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예전에 이 블로그의 글 중에, 기독교인을 싫어하는 이유중의 하나로 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행복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점이다. 난 자유로울 때 비로소 행복하다. 몸은 비록 자유로울 수 없지만, 난 내가 생각하는 바에 있어서는 어떠한 제한도 제약도 두지 않고 모든 자유로운 생각을 다 하고 싶다. 이것은 나의 모든 가치관에 우선하는 절대적인 가치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그 후배는 나에게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행복해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쉽다. 그냥 지금 이순간 행복하다고 느끼면 된다. “느낌”이란 가장 주관적인 항목이기 때문에, 생각 한끗발만 고쳐먹으면 순식간에 행복해질 수 있다. “난 xxx해서 행복해”라고 말한다면, xxx라는 조건이 사라지는 경우에 불행해질 것인가? 윗사람들한테 그렇게 부탁하고 잘 얘기해서 성공했다면, 반대로 그 사람들이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한테서 더 괜찮은 선물과 함께 청탁을 받고 날 무너트릴 수도 있다. 그럼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삶이다. 난 그렇게 살고싶지 않다.

난 참 소심한 사람이다. 남들에게 짜증을 내지 못하고, 싫은소리 하지 못하고, 남을 미워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여리고 착하다. 현재에 항상 만족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묵묵히 감수하며, 남이 부탁한건 다 들어주며, 제 몫을 챙기지 못한다. 한마디로, 좀 병신같은 놈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반대로 살고 있다. 자기 몫은 다 챙기고, 남이 부탁할 때 항상 댓가를 바라고, 미운 사람과 좋은 사람을 뚜렷이 구별한다. 가끔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손해를 보는게 너무 많았던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주인공을 부러워만 할 텐가?

내가 “옳은지” 또는 “틀렸는지”는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답이 내가 이렇게 살겠다는 결심에 영향을 줄 것 같지도 않다. 틀렸더라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간은 스스로가 맞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간다. (적어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은 해봤었을 것이다.) 태어날때부터 좌절하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후에, 비로소 그는 좌절할 수 있게 된다. 좌절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무언가를 바란 이상, 좌절하는건 당연한 결론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성취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없지 싶다. 특히 현대, 한국에서는. 대다수의 사람이 좌절하는데 자신이 좌절했다는 것은 결국 자기 일이니까 엄청난 일이지 전체로 보면 별것 아니다.

그래서 나는 소심한 성격을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그건 나의 “특징”이지 “단점”이 아니다. 마치, 내가 남자이고, 한국인이라는 것과 같은,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구성요소일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바꿔 나가느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문제다. 성격이라는 것이 참 바꾸기 힘든 것인데, 바꾸려고 해도 바꿀수 없는 부분이라면 관점을 바꿔서 그것을 장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나의 소심함은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치환시킬 예정이다. 아직은 생각의 깊이가 그다지 깊지는 않다. 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배가 한 얘기 중, 하나를 더 짚어보자면 내가 저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서 저평가 받고 있기 때문에 착취당하고 자기가 하고싶은 것을 하지 못하며 고생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보여질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그렇다. 솔직히 말해서 그래프 1000개 그리는 삽질을 할 때는 손목 부러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나이 또래의 대다수의 신입사원들 또한 그들이 들어간 회사에서 스프레드시트로 그래프 그리고, 마케팅 자료에서 통계 처리를 하고(분석은 안함),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쓸데없는 서류들을 복사하고 처리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고등학교까지만 배웠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업무다. 대학교, 대학원까지 마친 그들이 쓸데없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저평가일 것이다. 참고로, 난 그래프 1000개 그리기 같은 거의 기계화되었어야 할 단순 사무, 실험실에서 실험 장비 세팅하고 점검하고 운영하는 노가다성 업무, 실험에 관련된 특허 문서를 작성하는 정신 노동까지 다 한다. 아주 쉬운 것부터 아주 어려운것까지 전부. 이젠 레이저-플라즈마 상호작용의 컴퓨터 시뮬레이션까지 시킬 테세다. 내가 저평가 되었다면 그냥 단순한 노가다만 시켰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시킨다고 다 잘해버리는 나도 내가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 입자물리학 전공을 하고 싶은건 사실이고,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주제들은 사실 내가 하려는 입자물리와는 거리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기에 전혀 흥미가 없거나 재미가 없는건 아니다. 해서 나쁠게 뭔가. 그냥 하면 되는거지.

모 통신사에서 “생각대로 해, 그게 정답이야”라는 문구로 광고를 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대로 해서 뭐가 되겠어?”라든가 “병신아, 생각대로 하면 망해”라든가,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진짜로 “생각 그대로” 하고싶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도대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진짜로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진짜로 내 생각대로 살 생각이다. 비웃든, 부러워하든, 망하든, 성공하든.

조상님중의 한분인 남이 장군의 “북정가”로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남자가 스무살에 나를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랴”


http://snowall.tistory.com/926

옥션 회원정보 유출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0032502019919665003

옥션 해킹 사건으로 회원 정보 전체가 유출되었다고 한다.

어차피 내 개인정보는 중국 웹 사이트에서 굴러다니고 있기 때문에 (

http://snowall.tistory.com/315

참고) 전혀 놀라지 않았지만, 걱정도 안했고, 아무튼간에, 이제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번호라는 제도 자체를 없애거나 유명무실화 해야 하는거 아닐까.

거의 2천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면, 우리나라에서 경제활동하는 사람은 전부 다 들어갔다는 건데 말이다.

그림 공부

이 한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sqrt는 제곱근, abs는 절대값 함수다. 아직 gnuplot에서 저기에 수식을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겠다. (LaTeX도 설치를 아직 안해서…)

아무튼.

$f(x)=\sqrt{|x|-1}$과 $g(x)=\sqrt{|x-1|}$의 차이는, x>1인 영역에서는 두 함수가 같지만 x<1인 영역에서 달라진다. x<1인 경우, f(x) (빨간색) 는 $\sqrt{-x-1}$이다. 알다시피 제곱근 함수는 그 안에 있는 놈이 음수가 되면 값이 안나온다. (정확히는 복소수 값을 갖게 된다. 아무튼 실수가 아니라는거...) 따라서 -1부터 1사이에는 그래프가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1이 되어서 x<-1인 상태가 되면, 이제 그래프가 다시 생긴다. 이 함수는 x=0에 대해서 y축 대칭이다. g(x) (초록색) 는 x<1인 경우에 $\sqrt{-x+1}$이다. 따라서 이 함수에 있는 제곱근 안에는 음수가 올 수 없다. 따라서 1부터 다시 그래프가 그려지고, 이 그래프는 x=1에 대해서 y축 대칭이 된다. 그림 그려보면 쉽다.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함수를 분석하는 분야를 해석 기하학(Analytic Geometry)이라고 한다.

진학

자꾸 박사님이 나보고 여기 대학원으로 진학하라고 하시는데…

어제도 술마시면서 그 얘기를 했다.

밤 10시 30분에 삽질을 끝내고, 하루종일 두통때문에 힘든 와중에, 맥주 큰거로 한잔 하면서…3시간 동안 “다 아는 얘기”랑 “했던 얘기”를 듣는 것도 지겹고…여기로 진학하면, 5년을 더 그 소리를 술마시면서 들어야 한다는 건데, 나 자신에게 정말 잔인해 지는 것 같다. 그 박사님 밑에서 지도를 받을 텐데, 그럼 나 혼자 그걸 다 방어해야 한다는 소리다. 내가 그 박사님 밑에 있는 학생이 되면 지금보다 더 자주 술을 마실 게 확실하다.

그리고 오늘도 100% 가능성으로 야근 확정. 11시쯤 끝날 것 같다. (저녁 11시를 말한다.아침 9시에 출근했는데 아침 11시에 퇴근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미워할 거다.)

집에 와서 다 토하면서 결심한게 있는데, 아무래도 여기로는 진학을 안할 것 같다. 술 마시자는 얘기만 안해도 다닐만할 것 같은데, 여기 사람들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 그렇다고 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외국은 그냥 자기가 마실 만큼만 마시는 분위기라던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유학은 매력적인 것이다.

빙고 (거북이)

좋아하는 가수중의 하나.

더이상 명곡이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너무 아쉽다.

The Day You Went Away

Well I wonder could it be (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한데)

When I was dreaming ’bout you baby (내가 당신 꿈을 꿨을 때)

You were dreaming of me (당신이 내 꿈을 꿨었는지)

Call me crazy, call me blind (날 미쳤다고 해, 날 눈이 멀었다고 해)

To still be suffering is stupid (아직도 상처받는다는건 멍청한거지)

After all of this time (이렇게 시간이 지난 후에도)

Did I lose my love to someone better (더 괜찮은 누군가에게 내 사랑을 빼앗긴 것인지)

And does she love you like I do (그녀가 나처럼 당신을 사랑하는지)

I do, you know I really really do (내가 그러는걸, 내가 정말로 그러고 있는걸 당신이 아는지)

Well hey (음, 저기…)

So much I need to say (말할게 너무 많은데)

Been lonely since the day (그날부터 외로웠어)

The day you went away (당신이 떠난 그날부터)

So sad but true (슬프지만, 사실인걸)

For me there’s only you (내게는 당신뿐인데)

Been crying since the day (그날부터 울고있어)

The day you went away (당신이 떠난 그날부터)

I remember date and time (날짜랑 시간도 기억해)

September twenty second (9월 22일)

Sunday twenty five after nine (일요일 오후 9시 25분)

In the doorway with your case (문앞에서, 당신의 경우에는)

No longer shouting at each other (더이상 서로 앞에서 소리지르지 않았지)

There were tears on our faces (우리 얼굴에 눈물뿐이었거든)

And we were letting go of something special (그리고, 우린 뭔가 특별한 것을 보내버렸어)

Something we’ll never have again (우리가 두번다시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I know, I guess I really really know (난 알아, 내가 진짜 안다고 생각해)

Well hey

So much I need to say

Been lonely since the day

The day you went away

So sad but true

For me there’s only you

Been crying since the day

The day you went away

The day you went away

The day you went away

Did I lose my love to someone better

And does she love you like I do

I do, you know I really really do

Well hey

So much I need to say

Been lonely since the day

The day you went away

So sad but true

For me there’s only you

Been crying since the day

The day you went away

Why do we never know (우린 왜 그렇게 몰랐을까)

What we’ve got ’til it’s gone (우리가 보내버린 그건)

How could I carry on (어떻게 갖고 있을수 있을까)

The day you went away (당신이 가버린 그날)

Cause I’ve been missing you (당신을 계속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에)

So much I have to say (말해야만 하는게 너무 많아)

Been crying since the day (그날부터 울고 있다고)

The day you went away (당신이 가버린 그날)

The day you went away

The day you went away

——

원래 인생이 다 그래. -_-;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

근대화의 시대를 넘어서 현대가 되면서, 생산의 많은 부분들이 기계화되고 자동화되었다. 그럼에 따라서, 사람들이 할 일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할 일이 줄어들었지만 살아있는데 필요한 비용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100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바로 오늘이나, 사람들은 매일 세끼의 밥을 먹어야 하고 8시간동안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한다. 개인이, 어느 개인이든지, 생존하기 위해서 이런 것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이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먹기 위해서, 적어도 하루에 10000원은 있어야 하고,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한 하루에 10000원은 필요하다. 4인 가족이라면 하루에 8만원이 필요하며, 대체적으로 1년에 3천만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그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며, 생존 이상의 무언가를 원한다면 더 큰 돈이 필요하다. 옛날과 지금의 화폐 가치는 다를 수 있지만, 그 가치가 얼마가 되었든지간에 중요한건 그만큼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 매우 유명한 말이다. 하지만 이 명제는 현대에서는 부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 알아보자.

삼성전자, 금호타이어, 쌍용자동차, 그 외의 많은 회사에서 경영합리화와 고통분담이라는 멋진 말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게다가, 많은 회사들은 고용 유연성이 아직도 부족하다면서 좀 더 마음대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 달라고 하고 있다. 오래된 직원들이 그들의 생산성에 비해서 월급만 많이 받기 때문에 비용대비 효용이 떨어지고, 따라서 좀 더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내보내고 낮은 비용으로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는 것이 경제발전과 일자리 나누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뜻 보기에, 고용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직원을 누구를 쓸 것인가는 전적으로 그들의 개인적인 재산권 행사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런 주장을 막을만한 적당한 근거는 없다. 하지만 국가에서는 이 주장을 방해해야만 한다. 이러한 주장은 장기적으로 오히려 국가 발전을 저해하고 경제성장을 막기 때문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생존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해고된 사람들은 돈을 벌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은 죽을 것이다.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먹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해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건 내가 이 글에서 신경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은 조금 잔인할 것이다. 기계화와 자동화가 점점 진행되면서 이런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삼성에서 현재 6만명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제품 개발 부서와 경영진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을 벌지 못하게 되면 소비할 수도 없다. 공장에서 물건을 아무리 만들어 봤자 아무도 사지 않게 된다. 물론 수출해도 된다. 수출을 하게 되면 외화가 들어온다. 우리나라에서 돈을 찍어내지 않아도 돈이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 돈은 기업 운영진에게만 들어가는 돈이지 개별 국민에게 들어가는 돈이 아니다. 부의 집중이 심화된다.

원래, 기계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반복적이고 힘든 일을 기계에 맡겨버리고, 남는 시간 동안 좀 더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계에 일을 맡겨버리고 사람들은 남는 시간동안 창의적인 일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돈을 주지 않고, 돈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령,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사람들이, 비록 해고되었지만 어쨌든 먹고 살만하다고 가정하면, 그 사람들이 소설을 쓴다거나, 영화를 만든다거나, 물리학 연구를 한다거나, 그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발전적인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 노동을 전부 노예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서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고대 그리스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한다면, 단순 노동을 전부 노예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못 벌어서 굶어 죽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기계는 노예보다 더욱 효율적이다.

, 일하지 않는 자가 먹지도 말아야 할 경우, 문명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다.

흔히 사람들은 말하기를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그들이 무능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에 돈을 벌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들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는 거의 없고, 따라서 능력이 부족한 경우는 거의 없다. 가난이 그들을 무능하게 만든 것이지, 무능하기 때문에 가난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생각을 해보자. 서울역에서 구걸하고 다니는 노숙자들이 과연, 10대나 20대 때에도 무능했을까? 만약 그때부터 무능했다고 하더라도, 그 시절에 적당한 교육을 받았다면 그들이 가진 어떤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생기지 않았을까? 영화 “굿 윌 헌팅”을 보면, 그냥 평범한 청소부가 알고보니 수학 천재라는 사례가 나온다. 그런 경우가 과연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일까?

잘 이해가 안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만약 사람들이 일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만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일은 안하고 놀기만 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을 너무 좁게 해석한 것이다. 물건을 만들어 내고, 건물을 짓고, 그런 것만이 일이 아니다. “놀이” 역시 일이 된다. 가령, 사람들이 찬양하는 헐리우드의 위대한 업적인 “아바타”라는 영화는 옛날에 연극이라고 부르는 놀이가 발전된 하나의 형태이다. 이수만 씨를 부자로 만들어 놓은 소녀시대 역시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논다. 아바타같은 영화가 없고, 소녀시대같은 가수가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삭막할까? (사막 그 자체일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가 정말로 발전하기를 바란다면, “일”을 넓은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먹고살 걱정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 고용 유연화를 외치면서 사람들을 해고했을 때, 그 사람들이 먹고 살 걱정을 하게 만들면 안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면서 시위를 하고, 정부에서는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먹고살 걱정이 없었다면, 해고되었다고 시위를 했을까? 경찰에 주장에 따른다면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폭력적으로 관철하려고 한 폭도들인데, 과연 그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든건 누구일까?

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수호하고 있는 한, 정부에서는 기업인들이 만드는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에는 전혀 간섭할 필요가 없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팔면 된다. 하지만, 부정적 효과에는 간섭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게 정부의 역할 아닐까? 사람들이 해고되었을 때, 경제사정이 나빠지고 회사가 어려워지고 그 사람들이 무능해서 해고된 것이라고 하자. 그럼 그 사람들이 그냥 굶어 죽게 놔둬도 되는 걸까? 그렇게 된 것이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일까? 그걸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으면, 그렇게 해고된 사람으로부터 걷은 각종 세금을 모두 돌려줘야 한다. 국가가 그들을 책임지지 않겠다면, 그들에게 어떠한 비용도 징수해서는 안된다. 국가는 국민에게 세금을 걷는다. 특히,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확실하게 걷어간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걷어간 만큼, 최소한 그만큼의 책임은 져야 하는 것 아닐까? 예산이 없다는 변명은 정말 비겁한 변명이다. 국민에게서 걷어간 세금을 쓰는 데 있어서 바로 그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세금을 낭비했다는 소리일 뿐이다. 가장 유명한 예를 하나 들자면, 4대강 사업이 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의견을 갖고 있다. 그것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는 환경학자들과 환경보호단체에서 열심히 주장하고 있지만, 내가 신경쓰는 것은 그런 쪽이 아니다. 내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엄청난 세금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정작 국민들은 그 세금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정부에서 그렇게 큰 사업을 추진하고 싶다면, 적어도 국민들 사이에 커다란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국민들이 자신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게”라도 했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국민들이 그렇게 당할만큼 바보도 아니다.) 정부는 욕을 먹어 가면서도 그 일을 추진한다. 다른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런 예들은 찾아보면 산더미같이 나온다.

내 주장이 어떻게 보기엔 빨갱이 주장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 글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에 있는 내용이다. 그럼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잘먹고 잘사는 것이다. 내 주장은, 정부가 국민이 먹고 살 수 있게 하라는 주장이다.

오랜만에 스팸 번역





오랜만에 스팸을 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번역해서 올려둔다. 영어공부도 하고.










Dear snowall












, (친애하는 snowall에게.)





You
might find it difficult to remember me. Though, it is indeed, a long
time. I am much delighted and privileged to contact you again, after
such a long time. It takes God fears to remember old friends and at the
same time, to show gratification to them, despite circumstances that
made things, not worked out as we projected then.






날 기억하기가 좀 힘들 겁니다. 하지만, 오랜시간동안, 그랬지요. 그렇게 오랜 시간 후에 당신을 다시 만날 특권을 갖게 되어 매우 기쁘네요. 동시에, 우리가 계획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기쁨을 표시하기 위해, 신이 오랜 친구를 기억하기 두려워 해서 그런 것 같아요.








I take
this liberty to inform you that, the transaction we were pursuing
together two and half years ago finally worked out by God’s infinite
mercy. I decided to contact you to let you know that I have conscience
as a human being and it is only God in His wisdom that knows why it did
not work out for us in the first place.






난 이 자유를 당신에게 알리기 위해 사용하렵니다. 우리가 2년 반동안 추구해온 노력이 마침내 신의 무한한 자비에 의해 결실을 얻었어요. 난 내가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갖고 있고, 오직 신의 지혜만이 처음에는 그게 왜 안됐었는지를 알고 있으리라는 걸 당신에게 알리기로 결정했어요.








Meanwhile, I must inform
you that, I am on holiday in Australia with my family. I just arrived
yesterday Night and checked inn, in a hotel and decided to go down to
the hotel business centre to mail you. Now, with my sincere heart, I
released a total sum of USD750,000.00 as cashier check with my secretary
in Republic du Benin.






아무튼, 내가 알리려는건 이겁니다. 난 지금 가족들이랑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휴가를 보내려고, 지금 어제 밤에 여관에 들어왔고, 비지니스 센터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려고 내려왔어요. 그래서, 이건 진짠데, 내가 미국 돈으로 75만달러 정도 되는 수표를 배냉 공화국에 있는 내 비서한테 주고 왔어요.








Therefore, contact my secretary now on.






그러니까, 지금 즉시 내 비서에게 연락을 하세요.








NAME:
Mr. Hubert Soglo







EMAIL:











Yours
Truly,






진짜임다




Barrister Nkrumah







변호사 응크루마










이메일 주소는 혹시 낚이는 사람이 있을까봐 삭제하였다. 낚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알려줄 수는 있다.




이 편지를 3줄요약하면


1. 예전에 너 나랑 일했었는데 그땐 좀 미안했다


2. 나 지금 휴가 왔는데, 비서한테 75만달러 맡겨놨다


3. 그러니까 비서한테 연락해봐라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그돈 내꺼 되는건가? -_-


그리고 가족들이랑 호주에 가 있다니…염장질인가? 일단 난 당신이 누군지 몰라… 아프리카 서부에 있는 배냉 공화국에 아는 사람도 없고…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