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현실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보면, 판타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항상 승리한다. 원래 주인공이 이기는 이야기니까 그렇기도 하거니와, 숨겨둔 필살기라든가 특출난 재능인가 뭔가가 있어서 적이 생각하지 못한 헛점을 찌르고, 그렇게 승리한다.
그건, 적이 멍청한 것이다.
현실의 적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판타지 소설을 보면, 생명이 아닌 것들, 인간이 아닌 것들이 사람을 공격하고 잡아먹는다.
이건 현실도 마찬가지다. 온갖 도구와 기계들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자본은 마치 그 실체가 없는 마족처럼 인간을 정신 세계에서부터 파멸시켜 간다. 현실의 마법은 마력이 아니라 자본력으로 승부가 갈린다. 필살기라 할 수 있는 “드래곤 슬레이브” 급의 현금 유동성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금색의 마왕, 로드 오브 나이트 메어의 힘을 빌린 마법 정도를 사용하려면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미국 정도의 돈이 필요하달까나.
판타지 소설은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보다 리얼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의 생존 방법을 익히는 수밖에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
비극으로 가득찰 수밖에 없는 세상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이기지 않으면 진다. 비기는 건 없고, 도망가는 것도 없는 거다. 어느 분야, 어느 직업이든 그 속에서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은 다양하다.
손자 병법에 이르기를, 적이 멍청할 것을 믿을 것이 아니라 나의 준비가 튼튼한 것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적이 나오고 어떤 미래가 다가오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고 어떻게든 이기는 그 무언가의 힘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꿈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 나의 좌절은 얼마나 클 것이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가. 그리고 설령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면 나는 얼마나 실패할 것인가.
세상은 크다. 매우 크다.
REVOLUTION
Plenty of grit
スレイヤ-ズ REVOLUTION OP Plenty of grit
作詞 : MEGUMI
作曲 : 佐藤英敏
編曲 : 大平 勉
歌 : 林原めぐみ
吹(ふ)きあれる風(かぜ)が 髪(かみ)をすり抜(ぬ)けていく
거칠게 불어대는 바람이 머리를 스쳐가
その瞳(ひとみ)に 映(うつ)る現実(しんきろう)
그 눈동자에 비치는 현실(신기루)
光(ひかり)と闇(やみ)の狭間(はざま) 生(う)まれた 魂(いのち)
빛과 어둠의 사이에 태어난 혼(생명)
今再(いまふたた)び 立(た)ち向(む)かう時(とき)と
지금 다시 마주 볼 때라며
時代(じだい)を映(うつ)す鏡(かがみ)さえ ひび割(わ)れ砕(くだ)けて
시대를 비추는 거울조차 깨지고 부서지고
それでも生(い)きてる
그렇지만 살아 간다
求(もと)めてやまない 愛(あい)を叫(さけ)んでる
바라마지않는 사랑을 외치면서
断(た)ち切(き)れない 理想(おもい)抱(だ)いて 人(ひと)はさ迷(まよ)い続(つづ)ける
끊을수 없는 현상(생각)을 안으면서 사람은 방황을 계속해
立(た)ちはだかる壁(かべ)見上(みあ)げるより
가로놓인 벽을 올려다보기 보다는
打(う)ち崩(くず)す術(すべ)はあると 幻(まぼろし)を打(う)ち払(はら)って
부술 방법이 있다고 환상을 쫓아버리며
いつだって 今(いま)ここがはじまり
언제라도 지금 여기가 시작이야
くり返(かえ)す日々(ひび)に 置(お)き忘(わす)れた願(ねが)い
반복되는 나날에 잊어버린 소원
目(め)を伏(ふ)せても本当(ほんとう)は知(し)ってる
눈을 감아도 사실은 알고있어
強(つよ)さと弱(よわ)さ 優(やさし)さと傷跡(きずあと)
강함과 약함 상냥함과 상처
ゆらぐ心(こころ) 打(う)ち消(け)したくって
흔들리는 마음 지우고 싶어서
彩(いろど)られたこの街並(まちな)み さみしさ隠(かく)せず
색칠된 이 거리, 쓸쓸함을 감추지 않고
それでも生(い)きてる
그렇지만살아간다
明日(あす)を乗(の)り超(こ)える力(ちから) 求(もと)めてる
내일을 뛰어넘을 힘을 원하면서
強(つよ)がってる その脆(もろ)さも ひっくるめて 愛(あい)したい
강한체하는 그 바보같음도 모두 사랑하고 싶어
涙(なみだ)の跡(あと)消(け)せない痛(いた)みも
눈물흔적도 지울수 없는 아픔도
受(う)け止(と)めて 忘(わす)れないで
받아들이고 잊지 말아줘
そして未来(あした)が変(か)わるよ
그리고 미래는 바뀔거야
呼(よ)び起(お)こせ 眠(ねむ)ってる 根性(ちから)を
깨우는거야 잠들어 있는 본능을
断(た)ち切(き)れない 理想(おもい)抱(だ)いて 人(ひと)はさ迷(まよ)い続(つづ)ける
끊을수 없는 현상(생각)을 끌어안고 사람은 방황을 계속해
立(た)ちはだかる壁(かべ)見上(みあ)げるより
가로놓인 벽을 올려다보기 보다는
打(う)ち崩(くず)す術(すべ)はあると 幻(まぼろし)を打(う)ち払(はら)って
부술 방법이 있다고 환상을 쫓아버리며
いつだって 今(いま)ここがはじまり
언제라도 지금 여기가 시작이야
블루 스크린 in Vista
지적 생명체의 죽음에 관하여
모 블로거와 토론하다가 들었던 의문점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하자. 인간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한가지 특징은, 그 지적 생명체는 인간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언어체계가 비슷하든, 통역기를 사용하든, 뭐든 관계는 없지만 아무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럼, 우리가 이 지적 생명체를 죽이는 것은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은가?
(올바르지 않은 것을 부정한다면, 그럼 올바른가?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이 질문은 별개의 질문이다. 왜냐하면 윤리적인 문제는 아주 나쁜 것에서 아주 좋은 것 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할 수 있고, 윤리적으로 나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도 있고, 좋은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단, 이때의 윤리학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점은 받아들인다고 하자. 인간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을 죽이고 있으며, 그것은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 보다는 덜 비난받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현실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쳤더니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서 수화를 꽤 능숙하게 사용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http://animalpark.pe.kr/new2005/column/column_view.php?page=20&s_type=&s_code=&no=66
그런데 인간은 여러가지 의약품의 실험을 위해서 침팬지를 죽이고 있다. 즉, 내가 위에서 문제제기한 상황이 어쩌면 빠른 시일 내에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동물 보호론자는 아니며, 그렇다고 동물을 죽일 때 아무런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아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완전 중립적인 태도다.
답은 어떻게 될까?
과학을 하는 태도라는 건…
13세기의 영국의 수도승이었던 오캄은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이득이 없다면, 일부러 복잡한 설명을 선택하지 마라.” 이것은 현대 과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논리이다.
최근에, 어떤 블로거와 긴 토론을 하면서, 나 스스로도 내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의심을 많이 하였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프랙탈 우주론은 일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과 비교할 때 무언가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우주가 프랙탈 구조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될 수는 없다. 일반 상대성 이론 역시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동등하다”는 일반 상대성 원리로부터 출발하였다. 만약 그 원리가 진리가 아니라면, 일반 상대성 이론은 틀린 이론이 된다. 하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오차 범위 이내에서 정확히 예측하여 왔다. 예를 들어, 수성의 근일점 이동은 뉴턴의 고전 중력 이론이 설명하지 못한 미세한 차이를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였고, 중력 렌즈 현상과 태양 중력에 의한 별빛의 휘어짐을 설명하였다. 블랙홀의 여러가지 특징도 무사히 설명해 내고 있고, 우주 전체의 진화에 대하여 현재 남아있는 관측적인 근거들을 설명하는 우주 시작에 관한 이론도 일반 상대성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즉, 일반 상대성 이론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프랙탈 우주론은 그렇지 않다. 프랙탈 우주론은 현재 관찰하고 있는 우주를 해석함에 있어 또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을 뿐,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결과를 예측하거나, 일반 상대성 이론이 해석하지 못하는 결과를 해석하지는 못한다. 또한,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이미 잘 설명된 결과들을 새롭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렇게 보인다는 가설에 불과하다.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믿기 힘든 노릇이다. 이것은 프랙탈 우주론을 믿는 사람들이 증명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는 대안적인 과학 이론을 내놓는 사람들을 여럿 보아 왔다. 에너지 소모가 없는 공기 엔진을 만들수 있다고 주장하며 열역학 제 2법칙이 틀렸음을 주장하는 사람, 일반 상대성 이론이 오류임을 주장하며 절대성 중력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 창조론이 올바른 진리이고 진화론은 오류라는 사람, 최근에 있었던 제로존 이론까지. 이러한 이론의 특징은, 다른 주류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믿고, 그러한 패러다임에 맞춰서 연구를 수행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패러다임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우선, 앞서 말했듯이,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은 이미 잘 사용되고 있던 과학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새로운 현상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이미 잘 설명되고 있는 현상들 역시 잘 설명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기존의 과학 이론을 포함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열역학 제 2법칙이 틀렸고, 공기 중에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어째서 열역학 제 2법칙이 논리적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다른 현상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 논리적 오류가 있다면, 그 이론은 현실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있어야 할텐데, 그런것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공기 중에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는 현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는데, 오직 발견되지도 않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기존에 다른 곳에서 잘 사용되는 이론적 체계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창조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화론이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다면, 진화론의 논리적 체계에 위배되는 증거가 발견되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 증거와 생물학적 증거들은 진화론의 논리적 체계를 위배하지 않는다. 다시말해서, 진화론은 아직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뿐이지, 그 자체에 논리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창조론은 앞으로 생명체들이 어떻게 변화하여 나갈지,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종의 멸종이나 종 분화 등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런 구멍투성이 이론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과학이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과학의 발전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더 많은 것을 설명하고, 더 자세히 설명함으로서 이루어진다. 상상력은 중요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아직 보지 못한 일,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상상하고 그런 때에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굉장히 중요한 지적 활동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런 일들이 우리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세상이라고 믿고 있는 이 현실의 법칙 체계에서 모순되지는 않는지 등을 따져 보아야 한다. 아니면, 그냥 그건 Scientific Fiction이 될 뿐이다.
덧붙여서, 과학은 보편적 이론 체계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 법칙을 실험으로서 재현 가능하거나, 자연에서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재현되지 않으면 검증할 수도 없고, 따라서 과학 이론으로서 인정받을 수는 없다.
슬레이어즈 4기 12화까지 감상
겉멋만 든 정책
http://www.segye.com/Articles/NEWS/ECONOMY/Article.asp?aid=20080919002469&subctg1=&subctg2
=
정부가 그린벨트를 풀어서 수도권에 집을 더 짓는다고 한다.
국토 균형발전은 물 건너 갔구나…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금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지방에서는 집이 남아돌아서 텅텅 빈 아파트 단지가 많다고 하는데, 여기에 쌓여있는 물량을 해소할 생각은 안하고 새로 짓는다고 하니 이들은 눈뜬 장님인가.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주택 공급 문제의 본질은 수요와 공급의 공간적인 불균형이다. 즉, 모든 사람들이 서울에 직장을 갖고 싶어하고, 당연히 출퇴근 편한 수도권에 집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수도권”이라고 부르는 땅은 제한된 영역이다. 당연히 집 지을 땅이 부족하고 집도 부족해진다.
차라리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리더라도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을 통해서 서울의 기형적인 대규모화를 막고 전반적인 국가 발전을 노리는 것이 더 좋을텐데, 현재의 대통령은 당장 임기 내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욕심에 큰 문제를 보지 못한다.
수도권 근교에 집이 늘어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수도권에 몰릴 것이고, 서울의 실질적인 인구밀도는 마냥 높아지기만 할 것이다. 인구 과밀화된 지역에서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적인 과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교통체증, 땅값 상승, 집값 상승, 물가 인상, 등등. 이걸 더욱 심화시킬 것이 뻔한 정부의 정책은 정말 멍청하다는 수식어 외의 다른 단어는 좀 아깝다.
그렇다고 서울이 발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현재 서울의 발전은 인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인구를 줄이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서울시의 실질적인 유동인구를 줄여서 적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면, 교통체증이나 높은 물가는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까지 포함한 균형잡힌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에 좀 더 투자를 해야 하는데 어찌하여 돈은 수도권 안쪽에서만 돌아다니고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하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