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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레이어즈

    나에게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문학작품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나는 칸자카 하지메의 슬레이어즈와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기동대, 이렇게 두 작품을 꼽을 것이다. 아마 문학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개념을 통틀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을 꼽으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둘 다 유명한 일본 작품이지만, 이제는 거의 10년 이상 유행이 지나간 작품이라 이름이 익숙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 중, 공각기동대가 나에게 사회, 과학, 기술, 그리고 그것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내용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면 슬레이어즈는 인생관을 형성하게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슬레이어즈의 장르는 판타지이고, 주인공 리나 인버스와 그의 동료들이 부활한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서 모험을 벌인다는, 전형적인 판타지 이야기이다. 여기서, 그 주인공 리나 인버스의 태도는 나에게 많은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소개하자면, 리나 인버스는 세계 최강의 천재 마법사이며, 수많은 난관을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 극복한 주인공이다. 난관을 극복한 부분에서 자신의 능력과 의지만으로 뭐든지 해냈다고 하면 그저 의지와 노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흔한 의지드립이 되겠지만, 그가 의지를 갖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원천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사랑과 열정이 있다. 리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 가치관의 판단 기준은 자기 자신, 선택의 기준 역시 자신의 판단이다.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서, 오직 자신의 판단만으로 위험한 도박을 걸고 도전한다. 실패와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의 근원에는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실 나는 그렇게 의지가 강하거나,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으나, 나 자신의 평가는 그렇다.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서 리나의 모습을 바라보면, 나는 그 모습을 따르고 싶다. 비록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생이지만, 그는 그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하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후회는 하더라도 반성은 없다! 그것이 삶의 모토다. 그가 마왕을 퇴치하려는 이유는, 마왕이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다. 마왕이 자기를 위협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멋진 이유다. 세계를 구한다는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로도 세계를 구하고 바꿀 수 있다. 이 기준은 마왕 뿐만이 아니라 그에게 도전하는 모든 적에게 적용된다.

    내가 전 세계, 전 세대의 문학을 모두 섭렵한 것은 아닐테니 그 이전에, 그 이후에도, 이런 서사가 있었는지, 이런 캐릭터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 인생에 최초로 발견한, 존경할만한 인물이라면 바로 리나 인버스라고 생각한다. 그런 캐릭터를 창조해낸 작가에게 매우 감사함을 느낀다.

    [오래간만에 덕심이 불타올라서 적어보았다.]

  • 인터넷 뱅킹 루틴

    (뇌피셜) 내 생각에 우리나라 인터넷 뱅킹의 문제가 이렇게 된거는…
    1. 인터넷 뱅킹을 그렇게 만들어 버리면 인터넷 익스플로러 전용인지 모르고 일단 되게 해놨다. 어차피 그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많이 썼으니까 괜찮았다.
    2. 시대가 바뀌어서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유일한 웹 브라우저나 독점적인 웹 브라우저가 아니게 되었다.
    3. 그러나 인터넷 뱅킹 접속은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가능하니까 99% 이상은 누구나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한다.
    4. 은행사의 인터넷 뱅킹을 담당하는 임원 및 담당부서원들은 “고객들은 주로 우리 인터넷 뱅킹 웹 사이트에 어떤 웹 브라우저를 사용해서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는가?”라고 질문하고, 서버에서 통계를 뽑아본다.
    5. 파이어폭스니 크롬이니 하는 것들이 유명하다던데, 인터넷 뱅킹은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용자가 99%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건 서버에서 뽑은 접속자 통계가 강력하게 근거하고 있다. 자기들 은행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은행에 슬쩍 물어봐도 그렇다더라.
    6. 음, 그럼 뭐 굳이 인터넷 익스플로러 전용인 웹 사이트를 웹 표준에 맞출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을 낸다.
    7. 지금 이대로가 좋다.
    8. 3번부터 다시 시작.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루틴을 따라가는것 같은데. 이대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 자체를 윈도우즈에서 실행이 안되게 막는 정도의 초고강도 업데이트를 한다 하더라도, 그 때는 아마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할 수 있는 윈도우즈 버전에서 매우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가 CPU 속도가 10배 정도 더 빨라져서 윈도우즈 10 초기버전 갖고는 어떻게 할 수 없을 때쯤 되어서야 “어차피 요새는 다들 카뱅 쓰지 누가 인터넷 뱅킹 하냐”고 말하면서 그때조차 아무것도 안 고칠 것 같다. ….

  • 난민

    해외에서 피난을 온 난민보다 국내 약자와 서민들의 고통을 먼저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국가와 정부는 기본적으로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먼저 챙기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게 문자적으로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서 난민을 안 받으면 과연 국내 약자에게 그 관심이 갈 것인가? 그래서, 그 난민들이 오기 전에는 국내 약자들에게 많은 관심이 쏟아졌지만 난민들 때문에 관심이 줄어든 것인가?

  • 2012년 지구멸망

    2012년 지구멸망

    이번에는 예언서를 읽어보았다. 이미 2018년이 끝나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것은 예언서가 아니라 역사책이겠지만. 그리고 심지어 다 틀렸다. 자, 하나씩 파보자.

    가장 웃긴건 책 표지에 “예언이 아닌 과학적 근거 제시”라고 적혀 있는데, 5개로 나눠진 챕터 중 3개가 예언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이 책 표지를 기획한 사람은 이 책을 안 읽어본 것 같다. 아니면 책 팔아먹으려고 작정하고 그렇게 썼다는 건데, 내 생각에는 그냥 안 읽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문장 중에 가장 정확한 문장은 표지에 적혀 있는 “3년 후 대한민국은?” 이라는 질문이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그 때(=2012년 12월) 망할 뻔 했다.

    난 과학을 전공하고 있으므로 예언이나 고고학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니 1, 2, 3장의 내용은 그냥 넘어가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가 없는 내용들이 너무 많이 있다. 특히, 대부분의 지구 종말을 예언하는 책들이 그렇듯이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천문학적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솔직히 그건 그냥 그 책 쓴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천문학적 지식을 갖고 있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꼭 제대로 공부 안한 사람들이 옛 것 찾더라. 옛날 사람들이 쓴 예언서는 그렇게 믿어대면서 지금 사람들이 발표하는 논문은 왜 안 믿는지 잘 모르겠다.

    1장에서 마야인들의 비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먼저 마야인의 지배계급이 대략 173센티미터의 키를 가지는 큰 사람들이고, 피지배계층은 15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키를 갖고 있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그 근거로 마야 신전 내부의 계단 높이가 42센티미터정도로, 키가 큰 사람에게 맞춰서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건 읽으면서 진짜 이상했는데, 173센티미터 정도의 키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42센티미터짜리 계단은 너무 높다. 지배계층이 아무리 자기 권위를 내세우는걸 좋아한다고 해도 자기가 왔다갔다 해야하는 계단의 높이를 뭐하러 그렇게 높여야 했을까?

    뭐 그 뒤의 예언은 됐고, 일단 여기서 과학적 근거라고 주장하는 것들의 핵심적 내용은 태양 흑점 활동의 변화, 태양계 10번째 행성의 접근, 포톤벨트의 영향이다. 그중 정말로 우리 생활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은 태양 흑점 활동의 변화 뿐이다. 태양 흑점 활동이 변하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풍의 영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통신위성의 장애가 발생할 수 있고, 그럼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태양풍의 활동 정도도 태양 관측 위성으로부터 미리 정보를 받아다가 통신위성을 대피시키는 시대, 이른바 우주 일기예보가 되는 시대다. 그리고 태양에서 방출되는 에너지가 핵폭탄 1000만개가 동시에 터지는 에너지라고 하면서 겁주고 있는데, 그건 태양 표면에서 방출되는 에너지 전체이지 지구에 도달하는 에너지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에너지가 지구에 도달하고 있었으면 이 책을 한가롭게 읽고 있을 여유 따위 없이 이미 수억년 전에 모든 생명체가 멸망하고 지구도 사라져 있었겠지.

    10번째 행성의 접근은 천문학계에서 계속 반복되는 떡밥인데, 일단 없다고 봐도 좋다. 이건 사실 너무 당연한 내용이긴 한데. 요즘 시대는 수백광년 떨어진 곳의 별을 관찰하는 걸 넘어서 그 별에 존재하는 행성을 관찰하고 그 행성에 딸린 위성의 존재를 알아내는 시대다. 그런데 지구 근처에 있는 걸 모른다고?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난 천문학 전공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수천조 킬로미터 바깥의 존재를 측정하는 시대에 수천억 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뭔가를 모른다는 건 잘 이해하기 어렵다.

    자 이제 포톤벨트가 뭔지 알아보자. 가짜 정보에 의하면 포톤 벨트는 빛 에너지의 모임으로 우주여기저기에 뭉쳐있다고 한다. 그만 알아보자. 그건 그렇고, 포톤 벨트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따르면, 포톤 벨트는 플라즈마의 흐름이라고 한다. 이게 무슨 은하에 흐르는 전류 같은 건데, 어떤 시점에 전류끼리 합선되면서 강한 전류가 방출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전류의 방출은 은하의 자전축 방향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전류가 태양계를 통과하면 강력한 에너지 빔에 의해 생명체는 절멸한다. 아니 잠깐. 태양계는 은하의 자전축 위에서 너무 한참 벗어나 있는데 자전축 방향으로 방출되는 전류가 어떻게 태양계를 통과한다는 거지?

    총평: 이 책의 내용을 문장 단위로 뜯어보면 굉장히 무섭고 경악스러운 것들이 적혀있다. 하지만 문제는 책 전체적으로는 내부적인 정합성도 안 맞고, 저자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구는 멸망한다”는 가정으로만 되어 있다. 참고문헌에 논문이나 전문서적은 당연히 없고, 참고자료조차 따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뭐 일단 2012년이 한참 지난 지금 시점에서 아직 멀쩡하게 살아있는 인류를 보면서도 이 책의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혹시 이거 진짜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일단 전재산을 나에게 넘기면 된다. 페메 주면 계좌번호를 알려주도록 하겠다.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하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어질텐데, 그거보다 멍청한 짓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왜 덜 멍청한 짓은 못하는 건가.

  • risky gamble

    Sung by “Hayashibara Megumi”, from “Slayers” OST

    世間は猛スピードで未来に向かっているのに
    세상은 맹렬한 속도로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데
    Ah 今日はまたつまずき スネた自分と戦ってる My Heart
    지금은 넘어져서 좌절한 자신과 싸우고 있는 내 마음

    どんな 強い相手にも背を向けず生きてきたよ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물러서지 않아
    なのに良い子達に先をこされっぱなし
    그런데 좋은 사람들은 잔꾀를 못 쓰지

    うそでしょう?ジョウダンじゃない
    거짓말같지? 농담이 아냐
    ピカピカの才能すててしまうなんてもったいないし
    반짝이는 재능을 썩히기는 싫잖아
    神様にもらった一度きりの人生に
    신에게 받은 한번뿐인 인생에
    勝負を賭けましょう 逆転を信じて
    승부를 걸어보자 역전을 믿어

    自由を手にするのは そんなに楽じゃないから
    자유를 손에 넣는건 그렇게 즐겁지 않으니까
    まぁ チョットひと息ついてあせらなくても逃げないよ My Dream
    뭐 조금 쉬다가도, 조급해 하지 않아도, 내 꿈은 도망가지 않아

    冷た瞳をした大人になるのはゴメンだから
    차가운 눈동자를 하고 어른이 되는건 미안하니까
    Fight 出してき合い入れて もっと情熱的に
    싸워, 나가, 푹 빠져서, 좀 더 정열적으로

    自分より大きなハードルを選んで
    자기보다 더 높은 허들을 골라서
    超えてしまおうメゲないで行こう
    넘어서고야 말겠어, 포기하지 않아
    神様にもらった一度きりの人生よ
    신에게 받은 한번뿐인 인생이야
    勝負は最後までわからない Give me a Chance
    승부는 최후까지 모르니까, 기회를 줘

    やめてよジョウダンじゃない
    그만둬? 농담이 아냐
    ピカピカの才能 フル回転タフな底力
    반짝이는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는 터프한 저력
    残された直線差す脚はすごいから
    남겨진 직선은 멋지니까
    勝負は最後までわからない Give me a Chance
    승부는 최후까지 모르니까, 기회를 줘

    自分より大きなハードルを選んで
    자기보다 더 높은 허들을 골라서
    超えてしまおうメゲないで行こう
    넘어서고야 말겠어, 포기하지 않고 갈거야
    神様にもらった一度きりの人生に
    신에게 받은 한번뿐인 인생을
    勝負を賭けましょう 逆転を信じて
    승부를 걸어보자 역전을 믿어

  • 물질의 궁극원자 아누

    오늘 읽은 책 “물질의 궁극원자 아누(문성호 저)”는 굉장히 독창적인 책이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다른 마도서와는 달리,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 지금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우주의 전부일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학에 빠져들도록 만드는, 굉장한 매력과 마력이 있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금서로 지정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아누”라고 하는 기본입자가 우리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블랙홀이거나, 초끈이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무언가이거나, 대충 그런 것이다. 참고로 아누(Anu)는 단수와 복수가 같은 단어로, 복수형을 쓰기 위해 s를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붙이면 큰일나는 것 같다.
    저자는 자기가 공부 안해서 모르는 건 전부 우주의 신비, 밝혀지지 않은 진실, 과학의 한계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실험과 논문에서 나온 주장들 중에서 자신의 의견을 지지하는 문장만 쏙쏙 골라서 인용하고 있다.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은, 아누로 이루어진 원자의 구조를 어떻게 보았는가 하면, 투시력을 가진 사람들이 관찰한 결과로 알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온갖 신비학에 나온 이야기와 알려져 있는 과학적 사실들을 뒤섞어서 그 모든 것을 아누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판타지 소설 쓸 때 설정에 참고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상의 가치는 없는 책이다. 나는 이런 내용으로 500페이지 이상의 글을 쓸 수 있는 저자의 재능이 부러울 따름이다.

  • 비빔밥

    가령, 이런 것이 가능하다. 도시락 비밤밥을 만들 때, 섞기 전 그 안에 있는 재료의 위치를 모두 다 알고 있다고 해 보자. 그 다음, 도시락을 잘 흔들어서 섞어주면 비빔밥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이 경우, 섞기 전과 섞은 후에 같은 위치에 있는 재료가 적어도 하나는 존재한다. – 고정점 정리.

    한편, 비빔밥을 한참 섞다보면 언젠가는 섞지 않았던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즉, 섞더라도 하다 말아야지 너무 섞다보면 안 한거랑 같아진다는 뜻이다. – 푸앵카레의 재귀정리.

  • 한반도 평화 이야기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분단 이후 2000년도 까지 변한 것 보다, 2000년도 이후 지금까지 변한 것이 더 많고, 2000년도 이후 2017년까지 변한 것 보다, 2018년에 변한 것이 훨씬 많다. 그정도로 요즘의 한반도 정세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서로의 가족과 친구를 죽이고 나라를 갈라먹은 불구대천의 원수였고, 그 이후에도 전면전이나 총력전의 형태가 아니었을 뿐 국지적인 도발과 무력충돌은 이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 북한은 인류가 만든 가장 위험한 무기인 핵 탄두와 그것을 전 세계에 실어나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 기술 개발에 거의 성공했다. 어쩌면 완전히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북한이 올해는 완전히 태도를 바꿔서 남북정상회담을 여러 번 하고, 북미정상회담도 하고, 그 결과로 핵무기 폐기, 미사일 개발 중단 및 폐기,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이런저런 평화 분위기를 내고 있다. 여기서 나는 방금 “북한”이라는 주어를 사용했다. 이 문장에서 “북한”이 주어가 될 수 있는가?

    북한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자칭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제왕권국가다. 세습도 3대째 하고 있고, 국가 지도자에게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정 반대인 정치 체제를 갖고, 공화국이랑 양립할 수 없는 권력 체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북한”을 주어로 사용하는 것은 곧 “북한의 지도자”를 주어로 사용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남한의 경우 민주주의 공화국이고, 제도적으로나 실체적으로나 그렇게 되어 있다. “남한”을 주어로 사용할 때는 “남한의 대통령”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남한의 시민들”이 주어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둘의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으며, 북한의 외교나 행정에 대해서 북한 주민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북한은 전제왕권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세력의 대립을 평화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할까? 두 세력이 서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을 확인하고, 또한 약속하며, 그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세력이 서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내려면, 두 세력에 소속된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구의 뜻이 중요할까? 남한의 경우 대통령을 뽑고 권력자를 교체할 수 있는 선거권자들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 선거권자는 당연히 남한의 일반 시민이며, 다수가 평화를 바란다면 대통령은 평화를 대변해야 한다. 반대로, 다수가 전쟁을 원한다면 대통령은 전쟁을 선포해야 할 것이고,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다음 번 대통령은 전쟁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될 것이다. 북한의 경우 지도자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 북한 주민이나 지도층의 의견이 지도자에게 전달되어 지도자가 뜻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그 의견에 반하는 결정을 하더라도 그 지도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없다. 정권 교체라든가 탄핵과 같은 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한이 제 3자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분쟁의 당사자인 입장에서, 남한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누구를 겨냥해야 할까? 당연히 북한의 지도자이다. 북한의 지도자가 원하면 평화가 이뤄지고, 북한의 지도자가 지시하면 전쟁이 일어난다. 북한의 주민이 평화를 원한다고 전쟁이 사라지지 않으며, 북한의 주민이 도발한다고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북한의 지도자는 대북 정책의 핵심이다. 그의 생각과 의도를 정확하게, 적확하게 파악하여 그에 맞게 대처하고, 그 결과로 남한의 국익이 최대가 되도록 하는 것이 최선, 최적의 대북 정책이 된다.

    역사속에 지나간 정권들, 대통령들의 대북 정책을 보면 다양한 정책들이 있었다. 무조건 점령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기도 했고, 틈만 보이면 남침할 괴뢰집단으로 보기도 했으며, 화해와 협력으로 동반성장할 대상으로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냥 뭘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정책도 있었다. 그 모든 정책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있고, 나 역시 맘에 드는 정책과 싫어하는 정책이 있으며,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올바른 정책이라고 확정할 수도 없다. 다만 그 정책이 적용된 후 나타나는 결과에 따라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과거의 대북 정책을 요약해 보자면 고통받는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 북한 정권에 대한 압박, 북한의 대외적인 경제 제제 등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잘못되었다, 틀렸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 맘에 들건 들지 않건 이 정책들은 당시의 실권자에 의해 채택되었고 추진되었으며 실제로 적용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남북관계의 악화, 한반도 위기 고조 등으로 나타났다. 이 조치들의 특징을 보면, 북한 주민에게는 친화적인 정책이고 북한 정권에게는 적대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 정책을 채택한 사람들은 이 정책을 적용하면 북한 주민의 힘이 강해지고 북한 정권의 힘이 약해져서 북한 주민이 정권에 대항하는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은 악화되었고, 남북관계는 더 나빠졌으며, 전쟁위험은 높아졌다. 이렇게 된 상황이 이런 정책을 사용했을 경우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인지, 아니면 정책은 괜찮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인지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경우든 결과는 그렇게 된 것이고, 이 정책을 계속 적용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그 정책이 유지되어 왔고, 결과는 다들 알고 있듯 더 나빠졌을 뿐이다.

    2018년 현재 현직인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이와 반대로, 북한 주민 인권이나 상황 개선에 직접적인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그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대북 정책의 대상이 북한 주민이 아니라 북한 정권이라는 뜻이다. 현재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비위를 맞춰주고, 그의 정권을 보장해주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게 했을 때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이 얼마나 개선될지는 알 수 없다. 2018년 9월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15만명의 인민을 동원하여 집단체조를 선보였다. 그걸 보고 문재인이 웃으며 박수를 쳐야 했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걸 보고 문재인이 박수를 치건 치지 않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며, 또한 문재인이 거기에 기분 좋게 박수를 쳐 준다면 김정은의 기분이 좋아져서 남북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북 제제를 해제하고,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고, 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북한 주민의 인권을 악화시킬 것이며, 통일을 더 멀어지게 할 것이라고 한다.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북침 무력통일 뿐이다.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그 상황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을 의미하며, 운이 좋으면 한반도의 2차 한국전쟁으로 끝날 것이고, 제 3차 세계대전이 될 수도 있는 중대한 위기 상황이다. 그 사태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 아무리 탄압받는다 해도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그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도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현재 한반도 정세에서 북한의 존재는 어떤 하나의 무력집단 정도로 치부할 수가 없다. 북한은 남한이 인정하느냐와 무관하게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기능하고 있으며, 국가의 성립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느냐 또는 정권의 정당성이 있느냐와는 상관 없이 북한은 한반도 북쪽에 자리한 하나의 독립국이다. 남한은 북한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어째서 남한은 한반도 북쪽의 국토를 무단 점거한 괴뢰집단을 토벌하지 않고 지난 60여년간 그냥 두고 있는 것일까? 심지어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가장 강했던 시절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도 북한을 토벌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이유에서 그랬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와중에 북한은 세계 속에서 하나의 독립국으로 자리잡았고, 북한이 점령한 땅을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미국같은 강대국이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뿐 그쪽이 우리 영토 맞다고 생각하는,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 미국을 설득할 생각을 해야지 어째서 그걸 핑계로 두고 가만히 있는가? 북한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무관하게 실질적으로 독립국이다.

    하나의 독립국으로 자리잡은 북한에 대해, 우리가 북한 주민의 인권을 걱정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을 걱정하는 것과, 시리아 난민의 인권을 걱정하는 것과, 소말리아 국민의 인권을 걱정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냥 걱정스럽다는 말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다만 그 대상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나라이고, 같은 민족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다보니 좀 더 애착이 가고 불쌍한 것 처럼 느껴질 뿐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북한 내부에서 확립되어야 할 문제고, 그걸 외부인인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걸 어떻게 하자고 하면 북한 인권 상황에 우리가 개입해야 하고, 독립국의 내정에 개입하려면 무력을 사용해야 하며, 그 무력은 군대가 담당한다. 그리고 군대가 다른 나라에 가서 무력을 사용하는 행위를 전쟁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건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결국 남한이 국가로써 할 수 있는 것은 북한 정권과의 상호작용이며, 대북 정책의 목표는 남한이 원하든 원치 않든 북한 주민이 아니라 북한 정권이 된다. 그리고 북한 정권은 남한이 무너뜨리기에는 쉽지 않은 권력과 세력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힘으로 제압하기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화와 타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일단 누구와 해야 할까? 이 글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했지만, 북한의 권력은 지도자에게 집중되어 있고, 북한의 현재 주인은 김정은이다. 당연히 대화도 타협도 김정은과 해야 한다. 김정은은 북한의 대표자이자 지도자이므로 김정은과 대화를 하려면 남한도 대표자가 나서야 하고, 남한의 대표자는 대통령이다. 남한의 대통령과 북한의 지도자가 만나는 상황을 남북정상회담이라고 한다. 타협이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의견과 이익을 가진 둘 이상의 세력이, 모두가 의견을 고집한 결과 모두가 손해를 보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 각자의 의견이나 이익을 포기하고 양보하여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방법이자 과정이다. 즉, 그 누구도 한치의 손해도 없이 타협할 수는 없다. 그건 타협이 아니라 고집이나 독선이다.

    이번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을 비판하는 사람 중에는, 얻은 것도 없이 양보하기만 잔뜩 해주고 북한에 퍼주기만 하고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럴까?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9월 선언문을 보면, 일단 형식적으로라도 양쪽이 서로 무언가를 포기하고, 서로 양보하고, 서로 주고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이 무언가를 얻었다고 하면 남한도 무언가를 얻은 것이고, 남한이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면 북한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남한이 선언문을 지키면 북한도 그 선언문을 지킬 것이고, 북한이 만약 그 선언문을 깨트린다면 남한 역시 깨트려도 되는 것이다. 앞으로 그 선언문의 구체적 이행 과정에서 남한이 조금 더 손해를 보거나, 북한이 조금 더 손해를 보거나 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놓고 동등한 양보와 이익이 되지 않았으니까 선언은 깨졌고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할 것인가? 그걸 “대화와 타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고 할 때, 그 통일은 “평화 통일”을 뜻하지 “무력 통일”이나 “적화 통일”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남한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다면 “평화 통일”이라는 두 단어에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 “평화”인가? 아니면 “통일”인가? 각자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글을 맺는다.

  • 매트랩의 미친 문법

    매트랩의 문법은 쉽지만 골때린다. 예를 들어, 함수에 키워드로 변수를 넘겨줄 때 fn(x,y,’kwdname’,keyvalue) 이런식으로, kwdname을 쓰고 “그냥 그 다음에” 거기에 해당하는 값을 써주는데, 다른 언어에서는 그런걸 지원하지 않거나, kwdname 다음에 쉼표(,)가 아니라 다른 기호(예를 들어 =라든가)를 써서 두 값이 이름과 값으로 짝지어진 것을 구별해준다.

    그렇다. 한국어 중에는 알고도 헷갈리는 단어가 많다. “사과”라든가 “패자”라든가. 하지만 프로그래밍 언어에도 그런게 있으면 굉장히 골때리는데… 매트랩에서는 작은따옴표를 여러가지 용도로 쓴다. ‘를 숫자 뒤에 쓰면 켤레복소수, 행렬 뒤에 쓰면 공액행렬, 행렬 뒤에 점 붙여서 .’ 이렇게 쓰면 전치행렬, 그리고 문자열 앞뒤에 붙이면 그냥 문자열. 물론 .도 여러가지 용도로 쓴다. 소숫점으로도 쓰고 프로퍼티 접근에도 쓰고 *와 .*를 구분하는 용도로도 쓴다.

    이미지: 텍스트

    함수를 function y=my_func_name(x)로 정의하는데 return이 있는게 아니라 끝부분 쯤에서 y=0.5 이런 식으로 값을 넘겨준다. 물론 값 여러개를 한번에 넘겨주는걸 “최대한 쉽게” 구현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건 알겠는데, 함수가 언제 “끝나야”하는건지 알기가 어렵다.

    연산자 ./의 양쪽에 둘 다 공백이 있느냐, 둘 다 없느냐, 한쪽만 있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모호성이 없도록 하려면 그걸 사용자에게 알아서 쓰라고 할게 아니라 문법 수준에서 에러가 나도록 해야지….이걸….

    이미지: 텍스트

    save랑 saveas는 용도와 기능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둘 다 데이터를 파일에 저장하는 명령어이다. save는 파일 이름을 먼저 입력하고 변수를 그 다음에 지정한다. saveas는 변수를 먼저 입력하고 파일이름을 나중에 지정한다. 보통은, 이런 순서 정도는 통일해두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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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이워터의 기적

    물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현상의 근본 물질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온 굉장히 중요한 물질이다. 굉장히 중요한 물질 중 하나이면서, 유일하게 가장 중요한 물질이라고 하더라도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 중요한 물질이다. 그만큼 물은 우리의 생명과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물이 어째서 그런 특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그리고 물의 어떤 특성이 생명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밝혀내려고 노력해왔다. 이런 노력은 자연과학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지금은 물의 특성이 많이 밝혀졌고, 그 특성들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이 비록 물의 특성을 완벽히 설명하고 생명현상을 완전히 규명했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수는 있으나, 물의 신비를 밝혀내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은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자, 그렇다면 이 책에서 설명하는 파이워터란 무엇인가? 파이워터의 정의는 “생체수에 한없이 가까운 물이다”(45쪽) 라고 한다. 이 문장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궁금증은 바로 이것이다. “생체수와 파이워터는 어떻게 다른가?” 생체수라는 것 역시 잘 정의된 학술적 용어는 아닌 것 같지만,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생명체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이나 액체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파이워터는 생체수에 한없이 가까운 물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비슷하길래 “한없이” 가까운 것일까? 예를 들어, 생체수 그 자체는 파이워터인가, 아닌가? 생체수 그 자체가 파이워터라고 한다면 그것을 파이워터가 아니라 생체수라고 부르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또는, 생체수와 파이워터가 다르다고 한다면 생체수에 한없이 가까운 파이워터는 생체수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생체수의 어떤 물질의 농도가 1%라고 할 때, 파이워터는 그 물질이 1.1%를 포함한 것인가 0.9%를 포함한 것인가? 알 수 없다.

    그렇다 치고, 파이워터의 효능을 살펴보면 동식물의 건전성육, 물고기의 선도보전, 토양개질, 금속의 부식방지, 콘크리트의 강화, 엔진의 연비 개선, 정전기 방지, 수질정화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46쪽)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이 책에 의하면 물에 섞여 있는 철 이온이 우주에너지를 받아서 철 원자의 핵 스핀과 전자 스핀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 결과 높은 에너지 상태가 되고 따라서 그로부터 어떤 종류의 전자파가 방출된다고 한다. (46쪽) 그래서 50쪽을 살펴보면, 뫼스바우어 스펙트럼을 측정해서 뭘 알아낸다고 하는데, 뫼스바우어 스펙트럼은 원자핵에서 일어나는 감마선의 흡수와 방출에 관한 어떤 현상에서 나타나는 스펙트럼이고, 우주에너지랑은 아무 관련이 없다.

    이 책에서는 파이워터가 위에 적은 신비한 현상을 나타내는 그 이유로 물 분자들이 뭉쳐있는 덩어리(클러스터) 크기가 작기 떄문이라고 한다.(39쪽) 그리고 물 속에 들어있는 철 이온이 위에서 말한 에너지 방출 현상을 통해서 물의 수소결합을 끊고, 결과적으로 클러스터 크기가 작아지기 때문에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55쪽에서는 생명의 유전현상에 철 이온이 관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DNA의 유전현상에서 실제로 정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철 원자라는 것이다. 56쪽에서는 이런 것들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례를 하나 제시하고 있다. 무 씨앗은 원래 해가 긴 조건에서 싹이 트는데, 이 씨앗을 파이워터를 이용해서 처리하면 그 씨앗은 해가 짧은조건에서 싹이 튼다고 한다. 즉, 이것은 파이워터에 의해 씨앗의 유전정보가 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말도 안되는 일이며, 사실이라고 해도 이것이 증명한 것은 파이워터가 발암물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씨앗에 끼얹은 정도로 유전물질을 바꾸는 화학물질이라면 그건 분명히 발암물질이다.

    이 책에 의하면 파이워터의 효능은 굉장한데, 농작물에 뿌리면 영양분도 많고 빨리 자라고 크기도 커지고 수확도 많아지고 … 흙에 뿌리면 흙이 비옥해지고 토질이 개선되고 … 가축에게 먹이면 가축이 건강해지고 심지어 돼지가 비만을 탈출한다(!)는 부작용이 발생할 정도다. 자동차에 파이워터 시스템을 장착하면 연비도 좋아지고 매연도 줄어들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이 마시면 모든 질병이 치료되고 암도 낫는다. 여기에 반복적인 실험, 시험 결과라면서 구체적인 수치와 통계자료 같은 것을 제시하고 있는데, 실험값은 평균을 제시하고 있을 뿐 표준편차나 실험의 오차, 실험의 구체적인 방법, 실험 장치 등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심지어 저자가 “이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는데도 말이다. 교양서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해도, 학계에 보고된 내용도 없다.  있으면 인용하거나 자랑했을 것이다. 교양서라서 논문이나 전문서를 인용하는 것은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리학 교양서의 대명사인 “엘러건트 유니버스”의 뒷부분에 참고문헌이 몇 개 있는지 세 볼 것을 권한다.

    아무튼, 이런 물 관련 사기에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굉장히 쉽다. 여러분들도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물은 “깨끗한 물을 갈증이 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마시면 된다. 이것 하나만 알고 지키면 여러분은 물과 관련된 건강 지식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깨끗한 물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기관마다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깨끗한 물”이라면 충분하다. 깨끗한 물 보다 더 좋은 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