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앵벌이

(지난번에 썼던 글을 보충해서 다시 작성하였다.)

앵벌이는 다른 사람에게 구걸을 시키고 거기서 얻은 돈과 물건을 빼앗아 오는 범죄이다.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매우 나쁜 범죄이며 혹시 라도 주변에서 발견한다면 꼭 경찰에 신고하여 처벌을 받게 하도록 하자. 하지만 이 글에서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인공지능 앵벌이이다. 앵벌이는 앵벌이인데 인공지능 앵벌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인공지능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판단과 주관이 개입해야 하는 부분이 차츰 컴퓨터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현재는 주어진 목표 달성을 위해 개발자에 의해 잘 설계된 인공지능이 주로 보이고 있으나, 멀지 않은 미래에 범용 인공지능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여기서 범용 인공지능이란, 인간의 판단과 주관을 완전히 또는 거의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인공지능을 뜻한다. 이런 수준의 인공지능은 인간과 유사한 판단 능력을 갖고 있지만, 컴퓨터 또는 기계에 의해 운용되므로 전원이 공급되는 한 지치지 않고 일을 계속 할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에게는 인권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일을 아무리 많이 시키더라도 문제가 없다. (*여기서 이런 인공지능이 의식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논의하지 않도록 한다. 강인공지능이든 약인공지능이든 일단은 인공물이고 무생물이므로 인권이 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일은 어떨까? 예를 들어서, 택시 기사가 자신의 자동차를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무인 자동차로 교체한 후, 기사 본인은 집에서 쉬면서 인공지능이 택시 영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1] 만약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면서 그 사람에게 임금을 주지 않는다면 범죄이며, 당연히 법에 의한 정당한 임금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인공지능이 대체한다면, 인공지능의 주인은 인공지능이 벌어온 돈을 모두 가져갈 권리가 있다. 흔히 말하는 속담을 빌어서 이야기 한다면, 재주는 인공지능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먹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렇듯 이미 인간은 많은 자동화 과정을 통해서 기계에게 많은 것들을 대신 시키고 있다. 현재 기계에게 무엇을 시키고 있는지 본다면, 대표적인 사례로 인공지능을 통한 주식 거래를 생각해 볼 수 있다.[2] 집에서 주식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주식을 매매하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가져간다. 컴퓨터 알고리즘은 주식 시장의 변화를 보고 특정 주식이 오를지 내릴 지를 판단하여 매매를 결정하는데, 이것은 정당한 거래 행위로 간주되며 해킹과 같은 범죄 행위가 개입되지 않은 한 그 수익은 모두 컴퓨터 주인의 것이다.

다른 사례를 보자면, 컴퓨터 온라인 게임에서 나타나는 ‘오토’의 이용이다.[3] 오토는 오토마우스와 오토키보드 등 자동으로 사용자의 입력을 대체하는 프로그램을 줄여서 부르는 말인데, 게이머들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게임을 자동으로 즐긴다. 온라인 게임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들 중에,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는 것이나, 필요한 아이템을 모으는 것 등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게이머들에게 지루한 반복을 강요하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이런 과정을 피하고 자신에게 재미있는 부분만 즐기려고 한다. 따라서,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이런 부분들이 반복적이라는 부분을 적극 활용하여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입력하도록 하였다. 물론 오토를 사용하는 것은 오토를 사용할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또는 오토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것을 고려한 상태에서 설계된 게임의 특성상 게임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특히, 오토를 사용하지 않는 게이머들이 상대적으로 오토를 사용하는 게이머들에 대해서 박탈감이 들게 되므로 게이머들은 오토를 사용하게 되거나, 그게 싫으면 게임을 그만 두게 되어 게임 회사의 수익이 줄어드는 악영향이 나타난다. 오토를 사용하는 것은 게임의 재미를 줄이고 게임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로,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에게 일을 시켜서 돈을 벌어오도록 하고, 사람은 그 시간 동안 놀고 있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분명 불로소득이지만, 그 인공지능을 구입하거나 제작하기 위해서 들어간 비용이 있을 것이고, 인공지능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전기 요금과, 인공지능이 사용하는 장비와 기기 구입에도 비용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직 스스로 갖고 있던 자본과 노력을 투자하여 인공지능에게 일을 시키는 경우, 그 인공지능이 벌어온 모든 수익은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이 마땅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불로소득이 아닌가?

사람들은 불로소득에 대해 매우 경계한다.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을 얻은 사람은 수십억원의 당첨금을 받을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33%에 달하는 소득세를 납부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보다 적은 비율의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고 있으므로, 불로소득은 분명 근로소득보다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술은 인간이 일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달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발전할 것이다. 얼마 전 까지는 종업원이 제공하던 서비스를 이제는 기계가 서비스 할 수 있는 시대이다.[4] 하지만 사람들은 그 서비스가 인공지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이 직접 하는 것도 아니고 기계가 하는 건데 너무 비싼 것 아닙니까?” 라면서, 더 저렴하게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고 들 수도 있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일을 더 잘 할 수도 있고, 사람보다 더 안전할 수도 있고, 어떻게 해도 인권 침해나 감정 노동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사람은 사람이 서비스 하는 것이 기계가 서비스 하는 것 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C방을 한번 보자. 사람들은 PC방에 와서 놀다가 집에 간다. 원래 이 사람들은 PC방에서 놀지 않았다면 각자 한 사람씩 붙들고 놀았어야 했을 사람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던 일을 기계로 대체하여 PC가 사람과 놀아주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인력은 PC방 관리하는 인력 단 1명이다. 사람들은 이미 기계가 자신과 놀아주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위화감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있으며, 사람이 놀아주는 것 보다 기계가 놀아주는 것을 더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온라인 게임의 경우 혼자서 노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저편에 또 다른 사람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인공지능이 더 발달한다면? 사람은 대규모 RPG게임에 참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제외한 그 외 다른 모든 캐릭터가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인공지능의 행동이 사람과 충분히 유사하다면(*즉, 컨트롤도 잘 하고 실수도 가끔 하고 채팅도 할 수 있다. 이 시점의 인공지능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게이머들이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에 화를 낼 것인가? 아니면 그냥 즐길 것인가?

얼마 전, 아마존에서 직원이 없는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5] 손님이 매장에 입장할 때 스마트폰으로 인증을 하고 들어가면, 물건을 골라서 나올 때 자동으로 계산이 완료되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운영되는 매장은 인건비가 들어가지 않으므로 처음 매장을 열 때 들어가는 투자비를 제외하면 장기적으로 이득이다.

다시 반대로 생각해 보자. 세상의 많은 물건들은 이미 기계가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일부 소수의 명품은 수 십년 동안 기술을 갈고 닦은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것도 만약 기계에게 작업을 시킨다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고, 그 좋은 명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저렴하게 공급할 수도 있다. 기계가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런 영역은 기술의 발달로 점점 좁아지고 있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은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기계가 만들었거나 사람이 만들었거나 같은 품질이고 구분할 수 없다면 같은 가치를 가진 것이고, 기계가 서비스하거나 사람이 서비스하거나 구분할 수 없을 만큼의 서비스라면 같은 가치를 가진 것 아닐까? 소비자의 관점에서 서비스를 하는 주체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상관 없다면, 거기에는 같은 가치를 부여할 것이다. 그리고 공급 가격은 당연히 기계가 공급하는 경우가 더 저렴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소비자는 기계가 공급하는 서비스를 받을 것이다.

이런 일이 앞으로 일어날 미래인데,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시킨 그 주인이 인공지능의 유지 보수 외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돈을 벌어 가는 것을 어떻게 두고 볼 것인가? 물론 인공지능의 유지 보수가 복잡하고 까다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이 더 발전해서 그런 것도 필요 없이 단지 전기만 공급하면 되는 기계라면,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볼 것인가?

사실 반복 작업이나 고강도 노동에 있어서 지능적인 판단은 유일하게 인간이 기계보다 앞서고 있던 부분이었다. 기계는 인간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움직일 수 있고, 더 정확하게 재료를 가공할 수 있으며,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복잡한 패턴의 판단의 영역에서는 인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우리가 알던 세계에서 기계가 할 수 있는 것은 직선적이고 단순한 계기판의 수치를 보고 작동을 더 하느냐 정지하느냐 정도의 판단이었고, 이보다 복잡한 판단은 인간의 지능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그 지능은 다른 동물로 대체할 수도 없이 지구에 사는 동물 중에서도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딥러닝이 개발되면서 기계의 판단은 점점 인간의 판단력을 따라잡고 있으며, 그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16년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었고, 그 결과는 다들 알고 있듯이 알파고의 5전 4승 승리였다.[6]

인공지능이 점점 보편화되어 갈수록 사람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기술이 발달하면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이다. 인공지능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임금을 줄 필요도 없고, 인권에 대해 따질 필요가 없으므로 24시간 1년 내내 일을 시킬 수 있으며, 사람처럼 지치거나 하지 않고 에너지만 공급하면 언제든지 일을 할 수 있다. 여기에 판단 능력이 점점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으므로 인공지능이 활약할 영역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고전적인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기계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을 예전에 넘어서고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부분 외에도, 인간보다 더 빠르고 더 단단하고 더 섬세하다. 가령, 공장자동화와 기계화에 맞서서 영국에서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인간이 제공하던 노동력을 기계가 대체하면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생계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의 노동자들은 기계를 파괴하고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매우 당연히, 기계에 일을 시키는 것이 생산 비용의 감소를 가져와서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계와 함께 공장자동화는 진행되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에 의해 인간의 지능이 필요한 부분이 대체될 수 있다면, 인간은 결코 인건비 싸움에서 인공지능에게 이길 수 없다. 인간은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으며, 기계처럼 휘발유나 220V전기를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사람이 휘발유나 220V를 먹는다면 죽는다!)

고전적인 일자리의 감소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인간의 생계가 위험해진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따라서 먹고 살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기계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기계와 경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기계는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일을 하고 받은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는데, 그 사람들의 일자리가 인공지능에 의해서 대체될 수 있다면 사람에게 주는 인건비는 점점 떨어져서 인공지능에게 들어가는 비용만큼 내려갈 것이다. 현재는 인공지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건비가 그렇게 까지 떨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로 볼 때 곧 많은 사람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이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여기까지만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그 대책은 개인에게 맡길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이런 부분에서 생계에 문제가 생긴 개인이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문제는 개인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이라는 개념에 대해 근본적 관점의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일’이라는 행위는 곧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고, 그것은 이제 시간의 문제일 뿐 그렇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일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것들을 ‘일’의 영역으로 가져와야 하며,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단지 기존에 이야기하던 물질적 소비재를 생산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모든 종류의 소비재를 생산하는 것으로 확장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성세대의 강점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아둔 경험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을 책으로 만들거나, 강연을 하는 식으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사람들이 기존에 하던 일 이외에 자신의 취미 생활, 호기심을 만족 시킬 수 있는 여러가지 다양한 활동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인데,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서 새로운 경제적인 주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필자가 들어본 적이 있는 사례들이며 이외에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이미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모짜르트의 작품과 유사한 형태의 교향곡,[7] 렘브란트의 작품과 유사한 형태의 그림은 만들어지고 있다.[8] 하지만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기법, 새로운 화풍을 가지는 창조적 영역은 아직 인공지능이 도달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 부분에 인간이 추구해야 할, 그리고 추구하게 될 고유한 영역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경제 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인공지능 등 기계와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생긴 잉여 수익과 자본을 활용하여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이 당연한 이유는, 자동화 하기 이전에 들이던 비용을 자동화 하면서 절약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 차이는 당연히 원래 그 자리를 채우고 있던 사람에게 들어가던 비용 만큼이기 때문이다. 이 잉여 자본의 전액을 이와 같은 복지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부는 이런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맞다. 그것은 사람들이 생계를 걱정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될 더 큰 사회 문제를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에서 예시를 들은 것과 같이 인간이 만들어 낼 새로운 가치가 사회와 세상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8/19/0200000000AKR20160819007751072.HTML

[2] http://stock.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8301944a

[3] http://news1.kr/articles/?2878979

[4]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8/12/0200000000AKR20150812090200030.HTML

[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2/2017022200797.html

[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15/2016031501207.html

[7]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8/09/0200000000AKR20160809108100061.HTML

[8] http://news.joins.com/article/1985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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