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원 우주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경고: 이 책은 반드시 금서로 지정되어야 하는 책이다. 어줍잖은 물리 지식과 종교적 신앙을 갖고 이 책을 읽어서는 안된다. 당신은 웃다가 죽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연세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신준호 교수가 쓴 책이다.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의 가벼운 책인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금서로 지정되어야만 하는 책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마도서는 적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관점에서 쓰여져 있다. 일단 책 내용을 먼저 소개하자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블랙홀이 성서에 나오는 우주이고, 우리 우주는 홀로그램 우주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 우주는 진짜 우주가 아니며, 영적인 우주가 진짜 우주라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예수는 11차원 우주로부터 부활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내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성경의 나오는 구절과 교양과학 도서(멀티유니버스(The hidden reality), 브라이언 그린 저)에 나오는 구절을 한 구절씩 비교해 가면서 “성서의 이 구절과 멀티유니버스의 저 구절은 이와 같은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존재와 성령의 나타나심을 굳이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블랙홀, 양자얽힘, 홀로그램 우주, 엔트로피, 이런 개념들이 예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나타나심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힘들여 설명한다는 것이다. 뭐, 사실 과학이랑 신학을 제대로 공부했으면 그런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다들 알 것이고, 이 책을 진지하게 읽을 사람이라면 내가 여기서 저걸 비판해봐야 아무런 감흥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저런 설명들이 과학적으로 어떻게 틀렸는지 지적하는 것은 그만두도록 하겠다.

그건 그렇고.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결국 우주의 아름다움과 위대한 구조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따라서 신앙을 갖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어느 불행했던 이웃이 스스로 삶을 마쳤다는 소식을 듣는 그때도, 우리는 한쪽 눈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뻐해야 한다. 그것은 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본문 101쪽)

이런 문장이 있는걸로 봐서는 분명한 것 같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종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를 알리는 책을 쓰는 건 내가 권장하고 싶지는 않아도 어떻게 방해하거나 말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와 같은 시도는 신을 인간에게 이용당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하는 것이다.

자, 이 책에서 언급된 대로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 존재와 자연 현상들이 성경의 내용과 관련이 있고, 신의 권능이나 섭리 뭐 그런 것들과 실제로 연관이 있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인간이 과학, 공학, 기술을 극한으로 추구할 경우 신의 권능을 우리가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서, “신의 뜻에 따라서 사는 것이 사후의 영광을 보장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고 해 보자. 그럼 그 다음으로 공학자들이 할 일은  신의 뜻을 어떻게 활용하고, 사후의 영광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 최적 조건을 찾아내는 것이다. 즉,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확실하게 사후의 영광이 보장되는지 최적 조건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런 교활하고 욕심많은 마음으로 신을 섬겨봐야 신은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겠지. 하지만 신이 인간의 마음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마음조차 속일 존재들이다.

과학과 공학은 인간의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 호기심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을 찾아내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장치를 필요하다는 이유로 창조하는 호기심이다. 그 결과, 신비한 현상과 신의 섭리로 설명되어 왔던 수많은 자연현상들의 작동 원리가 밝혀지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이용해서 현대 문명을 만들어 왔다. 초끈 이론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론적 영역에 있는 이론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험적으로 증명하거나 부정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과학 이론이다. 초끈 이론의 체계에 신의 섭리를 묶어서 설명한다는 것은 곧 초끈 이론과 신의 섭리를 한 배에 태우는 것이다. 즉, 초끈 이론이 틀릴 경우 신의 섭리도 부정당한다. 반대로, 초끈 이론이 맞을 경우 우리는 신의 섭리를 ‘공학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을 신성 모독이라고 말 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자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고, 만약 신이 우리 우주에 실존하고 자연의 일부라 한다면 연구하면 안될 이유가 없다. 신이 실존하지만 과학자들에게 신성모독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신의 섭리’에 해당하는 법칙을 그때 그때 바꾼다면? 그건 ‘과학적’으로 연구할 대상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자연이란, 그 모습은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작동 법칙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대상이다. 과학이 발전하기 전에도, 천년 전에도, 백년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자연 법칙은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변한 것과 변해갈 것은 자연 법칙을 설명하는 관점과 이론일 뿐이다. 과학자들에게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신을 연구하지 말라고 할 거면 신의 섭리와 과학 이론을 엮는 것 역시 신성 모독이다. 그렇다면 위대한 신을 인간의 연구 영역으로 끌어내린 것은 누구인가? 과학자들인가, 아니면 이 책의 저자인가?

사족: 이 글 쓰는데 정말 어려웠던 것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이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는 것이었다. 서두에 적어둔 경고문은 농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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