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결(2)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의 두번째 항목으로 ‘솔선수범’이 적혀 있다. 음, 이건 원래 의도대로라면 사실 솔선수범을 안 한 경우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부분은 망했다. 솔선수범을 한 경우를 찾아버렸다. 이 글을 기대하면서 읽고 있었을 독자 여러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근거없는 글을 쓸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위 동영상의 1분 36초 부분에서 “여러분, 비지니스를 하면 다 적이에요.”
2분 24초 부분에서 “여러분, 비지니스 판으로 들어온 이상은 … 시쳇길밖에 없습니다. … 앞에 적이 나타나면 무조건 싸워서 이기고 죽여야 됩니다.”

이걸 듣고 있다보면, ‘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을 꼭 실천할 필요가 없다면서 실제로 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을 반대로 실천하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욕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등, 솔선수범을 하는 사람이다.

3분 13초째에 “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의 오해가 뭐냐면은, 할말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게 우리나라의 더러운 문화가 되어서…” 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할말은 해라!”라고 하는데,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나도 신영준 박사에게 할 말이 있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솔선수범은 하고 있고… (맥락 없이 앞뒤 잘라버렸다고 할까봐 그 맥락을 얘기하자면, 이 말 앞에서는 블루오션/레드오션 얘기를 했기에 이 발언과 상관이 없고, 그 이후에는 알바생이 사장에게 근로계약서를 쓰자는 말을 과감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내가 신영준 박사에게 이만큼 과감하게 할말을 할 수 있었다.)

‘뼈있는 아무말 대잔치’에서는 ‘소통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결’의 첫번째 조건인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의 세번째 미덕으로 ‘도덕적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적혀 있다. 도덕적 권위는 신뢰를 쌓기위해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럼 그는 도덕적 권위가 잘 세워져 있는가? 그의 강연을 다 들은 것도 아니고 그의 동영상을 전부 본것도 아니지만, 하나의 사례를 들고 와 보자.

PPSS기사

먼저 신영준 박사는 위의 기사에 대해 전면적으로 오해와 악의로 가득찬 기사라고 주장하며 본인의 강연이 굉장히 호응을 많이 받았고 좋은 강연이었다고 하고 있다.

자, 이 강연의 ‘내용’이 어땠는지는 평가하지 않겠다. 뭔가 좋은 내용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 보지도 않고 평가하는 건 공정하지 않을테니까.

이 동영상의 1분 24초 부분을 보면 본인이 평소에, 강연에서 욕설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저 PPSS기사에서 욕설과 비속어 등을 사용한 것은 인정하는 것으로 보겠다.

그런데, 2분 13초에 보면 “미친 강연”, “씹새끼”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아마 그는 이와 같은 표현을 이 동영상의 이 부분에서 어쩌다가 한번 쓴것이 아니라, 평소에, 강연에서 하고 다닐 것으로 보인다. 그의 브런치에서 발견되는 책 리뷰를 보면 ‘미친’이라는 표현이 자주 발견되는 것이 이 추측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그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도 편하게 놓는다.

주의! 신박사가 전해달라는 ‘영준’은 ‘신영준 박사’가 아니다.
내가 그의 브런치에 썼던 댓글들이다.
(여기서 내가 반말을 사용한건 상대가 먼저 반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그의 ‘행동’을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가할 수 없지만, 언어사용으로만 놓고 보면 그는 도덕적이지 못하다. 첫째로, “미친”이라는 표현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해 비하하는 표현이다. 물론 “미친”이라는 표현이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을 직접 대상화하지는 않지만, “넌 미쳤다”라는 표현이 비하적 표현으로 쓰이는 이유는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은 낮게 보는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씹새끼”라는 표현도 도덕적이지 못한 언어사용인데, “씹”은 여성의 성기를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고, “새끼”도 사람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며, 그걸 합친 단어 역시 사람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다.

셋째로 그는 누군지 알지 못하는 익명의 상대방에게 합의하지 않고 반말을 사용한다. 언어에는 문화가 담겨있고, 한국어에는 상대에 대해 친근해지기 전 까지는 존댓말을 사용하는 문화가 있다. 상대가 먼저 말을 편하게 놓자고 제안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먼저 제안하지도 않았고, 그런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반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상대에 대해 무례한 언어사용이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공개되지 않은 자리나 소규모의 사적인 대화에서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크게 불쾌해하지 않는 경우에 사용하는 것 정도까지는 너무 흔하다보니 일일이 문제삼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개된 발언, 공적인 발화에서는 문제가 된다. 강연이나 발언을 들은 사람이 아무도 불쾌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충분히 문제삼을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데, 특정한 조건의 인간을 비하하는 표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 역시 그가 도덕적이지 않다는 근거로 충분하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그는 신뢰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세가지 조건인 언행일치, 솔선수범, 도덕적 권위 중 적어도 두가지가 부족하다. 그는 신뢰받는 사람일까? 나는 그에게 ‘뼈있는 아무말 대잔치’를 열번 정도 정독하라고 권하고 싶다.

(글이 이어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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