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일상

  • 완전자율주행차

    짧은 예측이다. 완전자율주행차량은 완전주행차량 전용도로가 만들어지고 거기서만 달릴 것이다. 즉, 자동차전용도로에 이륜차가 못 들어가듯이, 완전주행차량이 아니면 진입하지 못하는 도로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돌발상황의 발생 원인이 대체로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인간이 없으면 완전자율주행이 굉장히 안전하게 가능해질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시작해서 점점 자율주행차량 전용 도로망이 늘어날 것이고, 이후에는 자율주행차량의 안전규칙을 위반하는 인간 운전자의 행위가 감지되면 방해되는 로직이 준 자율주행차량이나 그보다 낮은 단계의 안전운전보조장치에 도입될 것이다.

    그럼, 이제 10년쯤 후 실제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 성공하고 싶은 당신에게

    일러두기: 이 글은 경제/경영학을 나무위키로 공부한 어느 일반인의 두서없는 헛소리에 불과할 수 있으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읽어보고 납득이 안되는 부분은 댓글로 지적하기를 바란다. 댓글 달기 귀찮으면 아무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https://www.youtube.com/post/UgymzMwegOdp8blLJ654AaABCQ
    대충 위 링크에 있는 글을 읽었다.

    저 글을 읽고 보니 이상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이 글을 쓰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하나씩 까보자.

    성공의 기준은 누구나 다르지만 기초는 똑같다. 그중에서도 핵심 중에 핵심은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잘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성공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공의 비밀은 복리의 누적이고 결국 복리는 JOONA 꾸준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자질이다.

    성공의 비밀은 복리의 누적

    일단 이 문단은 4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두 문장이랑 뒤의 두 문장이 호응이 안된다. 앞의 두 문장은 성공의 기초에 관한 이야기이고, 뒤의 두 문장은 성공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다. 이 문단은 두개로 쪼갰어야 했다.

    그건 그렇고, 성공의 기초가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잘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반박할 수가 없다. 이게 안되면 성공의 기준이 무엇이든 성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음, 나처럼 성공의 기준을 굉장히 낮춰놓은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튼 뭔가 하나라도 잘해야 성공이라는 걸 할 수 있는 것 같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착각에 대해 적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쓰려면, “성공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기초가 중요하다”라고 적어야 앞 문장과 이어지는데, 복리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글이 첫 단계부터 무너져 버렸다.

    그래서, 성공의 비밀이 복리의 누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복리는 이자에 이자가 붙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 경우 지수함수적인(또는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보이며 매우 빠른 성장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문장 안에서 “복리는 존나 꾸준한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자질이다”라고 선언한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복리이자로 돈 버는 사람들은 일 안하고 돈 벌던데…?”였다. 뭐 그건 그냥 개인적으로 비꼬기 위해서 떠올린 생각이고, 자신이 가진 바탕에 꾸준한 노력을 더해서 갖고 있는걸 계속 불려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노력을 하면 인생의 자본이 그렇게 복리처럼 불어날까? 글쎄다. 노력을 해서 뭔가를 얻었을 때,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절대로 복리처럼 늘어나지 않는다. 들인 노력에 해당하는 만큼 선형적으로 늘어날 뿐이다. 만약 그것이 자본이라고 한다면 경제성장에 따라 복리로 늘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남들도 다 하는 성장이기 때문에 남들도 다 그만큼씩은 큰다. 노력에 대해 얻은것이 인맥, 우정, 사랑 같은 추상적인 대상이라면, 노력에 대해 얻게 되는 부분이 굉장히 비선형적으로, 예측과 실질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가 흔하다. 뭘 성공이냐고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꾸준히 노력한다고 해서 그게 자신의 바탕을 복리처럼 성장시킬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꾸준한 노력은 실제로 무엇을 이뤄내는가? 꾸준한 노력이 실제로 만들어 내는 것은 더 많은 성공 가능성이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현실의 전체를 파악할 수 없고,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일부분에 대한 사실만으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어떤 결과를 얻고 싶을 때, 운이 좋다면 단 한번의 시도만으로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운이 나쁘다면 백번의 시도에도 실패할 수 있다. 여기서 노력은 그걸 몇 번 도전하느냐를 결정한다. 시도할 때 마다 조건이 조금씩 바뀌고, 이전의 시도에서 교훈을 얻어서 더 나은 시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도할 때마다 새로 바뀐 부분을 고려하고 이전에 얻은 교훈을 적용한다고 해도, 그게 그 다음번 시도에서 반드시 이롭게 작용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결과를 예측하고 성공할 것 같은 방향으로 시도할 뿐이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노력이라고 부르고, 포기하든 성공하든 도전의 끝을 보고나서야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성공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그냥 그 시점에 시도한 사건의 결과다. 노력의 정확한 결과는 마침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성공 그 자체와 성공의 가능성을 분리하지 못하면 “왜 난 꾸준히 노력했는데도 성공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틀린 결론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성공을 원한다면 자신이 성공하는데 단지 노력만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다른 조건이 만족되지 않은 것인지, 그걸 스스로 깨달을 필요가 있다.

    체인지 그라운드는 끊임없기 개혁 중이다. 완벽한 회사란 없지만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서이다. 회사에게 완벽함이란 무엇인가? 일단 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망해가고 있는가? 매년 흑자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망하지 않는가? 언제 어떤 위기가 와서 망할지 모른다. 결국 망하지 않으려면 간단하다 직원들이 받을 연봉이 10년치 정도 회사에 잘 보관되어 있으면 된다. 그러면 어떤 위기와 마주해도 극복할 시간은 충분하다. 10년 동안 극복하지 못하면 그것은 망해도 싸다. 현재 1년치 연봉이 회사에 있다. 9년치 모으면 된다.

    글쓴이는 개혁중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먼저, 회사에게 완벽함이 무엇인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조건으로 망하지 않는 것을 들었다. 다시 말해서 모든 “망한 회사”는 “완벽한 회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간단한 말장난을 해보자. 이 회사가 완벽한 회사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일단 망한 회사라면 완벽한 회사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망하지 않은 회사라면? 그 회사는 완벽한 회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이어서 이 글은 회사가 망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10년치 연봉을 쌓아두면 된다는 간단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가능한 일인가?

    전직원의 10년치 연봉을 모아두는 것은 현재 일하는 직원보다 10배 많은 사람들을 1년간 고용할 수 있는 돈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현재 일하는 직원이 10배 많아진다면 매출이나 수익은 어떻게 될까? 상품을 10배 더 많이 만들어서 판매할 수 있으므로 매출과 수익 등이 10배가량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당장 그 10배의 직원을 고용하지 않는가? 방금 말했지만, 아직은 그 돈이 없으니까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 저 회사가 만들어진지 대충 1년이 안된 것 같은데, 1년간 모아서 전직원의 1년치 연봉을 쌓아두었다면, 10년간 모으면 10년치 연봉이 쌓일 것이다. 이 회사는 10년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직은 위험하다. 전직원의 1년치 연봉만 쌓여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는 1년밖에 버티지 못한다. 그렇다면 전직원의 1년치 연봉을 이용해서 직원 수를 2배로 늘리면 수익이 2배 늘어날테니 1년 후에는 전직원의 1년치 연봉이 다시 쌓이게 된다.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면, 다시 잘 생각해 보자. 전직원의 수가 2배 늘어났고 수익도 2배 늘어났으니 쌓인 돈은 여전히 전직원의 1년치 연봉이다. 이렇게 보면, 직원수를 늘리든 말든 전직원의 10년치 연봉을 쌓아두는데는 어쨌든 10년정도 걸린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미 10년치 연봉이 쌓여있으면 괜찮겠지만, 아직 1년치밖에 안 모여 있으므로 여전히 위험한 상태이다.

    물론 시장과 경제가 그렇게 단순한 이론으로 굴러가는 계가 아닐테니 단지 직원을 10배 늘린다고 수익이 그에 비례해서 10배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잘 생각해보자. 직원을 늘렸을 때 수익이 그에 비례한 것 보다 적게 늘어난다면 시장이 포화상태이므로 10년치 연봉을 저축하기 위해서 10년이상 걸린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직원을 늘릴 수도 없는데 성장세도 작아져서 회사가 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직원을 늘렸을 때 수익이 그에 비례한 것 보다 더 크게 늘어난다면, 현재의 직원 수를 유지하는 것은 성장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 쳐도, 어쨌든 직원을 늘리지 않으면 10년치 연봉을 저축하기 위해서 결국 10년은 걸린다는 뜻이므로 앞에서 지적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회사가 망하지 않으려면 그저 단순히 전직원의 10년치 연봉을 쌓아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애초에 전직원의 10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현금이 있으면, 그걸 투자해서 상품성을 개선해서 회사의 수익률을 올리고,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정석이다. 전직원에게 10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현금이 잉여자금이고 상품개발이나 신시장 개척에 투자할 돈이 충분히 있다고 해도, 그 잉여금을 더 투자해서 회사를 키우는 것이 정석이다. 글쓴이는 10년동안 버티면서 위기를 극복한다는데, 물론 10년동안 위기 극복을 못했으면 그런 회사는 당연히 망하겠지만, 10년이나 지속이 될 정도의 위기라면 사실은 그렇게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당장 회사가 망하게 생긴 상황을 위기라고 부른다. 대체 어떤 위기가 10년이나 기다려 주는가?

    우리 회사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회사 식구들의 내적 동기를 이끌어내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철저하게 내 몫이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남들이 한 시간만에 할 일을 30분만에 하고 남들이 9점 받을 일을 10점에 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일단 개인차가 있어서 똑같이 노력해도 분명히 결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JOONA 죽도록하면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익숙해지면 빨리할 수 있고 빨리하면 생각할 시간이 남는다. 생각할 시간이 남으면 의식적으로 노력할 수 있고 그렇게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퀄리티는 올라간다. 특정 시점에 선순환에 들어갈 것이고 이렇게 죽도록 하면 특정 시점에는 전혀 다른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회사를 성공시키기 위한 비책

    이 글을 처음 시작하면서 글쓴이는 “성공의 기초는 당연한 일을 당연히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기초에 더해서 하나 더 얹기를, “남들이 1시간만에 할 일을 30분만에 하고, 남들이 9점 받을 일을 10점에 하면 된다”고 한다.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이건 기초인가 아닌가를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남들이 1시간만에 할 일을 1시간만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30분만에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남들이 9점 받을 일을 9점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10점에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성공의 기초는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이건 보다 확실하게 성공하기 위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걸 하는 방법에 대해서 존나 죽도록 하면 익숙해진다고 한다. 익숙해지면 빨리하고, 그럼 생각을 할 수 있고, 그럼 의식적으로 노력할 수 있고, 따라서 퀄리티가 올라간다. …라는데. 먼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뭔 일이든지 존나 죽도록 하면 익숙해지기 전에 죽는다. 죽도록 하지는 말고 가능하면 적당히 열심히 하자. 그래서 어쨌든 익숙해지면 빨라진다는데, 정말 그런지 따지기 전에 일단 그 다음 문단을 읽어보자.

    최근에 나는 피디들이랑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친구들이 2시간에 할 일을 나는 빠르면 10분만에 끝내기도 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내가 일하는 모습까지 하나 하나 다 공개한다. 체인지 그라운드 일의 많은 부분은 창의적인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것은 철저하게 학습량과 그리고 평소에 미리 고민을 얼마했는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내가 일하는 모습과 결과를 본 한 피디 친구는 심장이 아프다고 했다. 너무 압박감이 심해서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러면 내가 말한다. “피드백 주지 말까?” 모두가 그것은 최악의 상황인 것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2시간은 절대적으로 깨지지 않을 것은 벽이었지만 이제 한 두명씩 생산성이 임계점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정말 단 시간에 바뀐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아는 것과 막연하게 믿는 것 간의 차이는 거의 전혀 다른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직원처럼 일하는 관리자

    글쓴이가 일하는 회사에서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은 창의적인 능력을 요구한다. 그 업무가 대체 뭘 하길래 얼마나 창의적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글에 따르면 그런 창의적인 능력은 학습량과 평소에 고민을 얼마나 했느냐가 결정한다고 한다. 학습하고 고민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이 글에 따르면 그렇게 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일단 죽도록 해서 익숙해져야 한다. 음 뭐 그렇게 해서 해당 업무에 익숙해지는건 좋은데, 남는 시간에 학습과 고민을 한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원래 하던 업무와 관련된 학습과 고민이라면 인간이 업무를 처리하는데는 인간적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법이므로 해당 업무의 효율이 점점 올라가다가 어느 시점에 포화될 것이다. 그 시점에서는 더 공부하고 고민해봐야 효율이 더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엔 무엇을 하는가?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해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거나, 당장의 업무와 관련이 없는 학습과 고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담당 업무가 창의적인 작업이라고 한다면 관련이 없어보이더라도 다른 분야에 대한 학습과 고민을 하는 것이 좋다. 근데 창의적인 일을 시간 제한을 걸고 하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하긴 한데, 그건 그렇다 치고 더 이상한건 미리 고민해야 일을 빨리 할 수 있다는 지점이다. 그럼 미리 고민한 시간은 업무 처리한 시간에 들어가는가, 들어가지 않는가?

    아무튼 글쓴이는 직원이 2시간만에 할 일을 빠르면 10분만에 끝낸다고 하니, 일반 직원에 비해 대략 10배의 생산성을 갖고 있다. 음, 그럼 직원 한명을 갈궈서 2시간동안 일을 시키는 것보다 본인이 10분만에 끝내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닐까?

    비교우위라는 개념이 있다. 글쓴이가 10배의 생산성을 갖고 있어도,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일을 해야 한다면 생산성이 낮은 사람이라도 글쓴이가 잘하는 일을 맡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좋은데 글쓴이는 최근 직원들이랑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럼 직원을 키우지 말고 10배 빠르게 본인이 처리해 버리고 다른 일들을 약간 늦게 하는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자기가 2시간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해도, 10분정도 들여서 직원의 일을 간단히 처리하고 자기가 할 일은 10분 늦게 처리해도 되지 않는가? 그 회사에 초 단위로 굴러가는 긴급한 상황이 많을 것 같지는 않아서 하는 말이다.

    다들 성공하고 싶어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성공하려면 실수도 악착같이 줄여야 하고 당연한 일을 진짜 당연하게 문제없이 언제 끝날지 몰라도 계속 해야 한다. 실수를 하면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빨리 반성하고 원래도 복귀해야 하고 잘해도 자만하면 안된다. 그냥 자신의 하는 일이 몸과 생각의 일부가 될 때까지 죽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해야되는 줄도 모르고 알아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은 문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게 열려있다. 열려있지만 아무나 들어가지는 못한다. JOONA 꾸준히라는 열쇠를 가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운이 좋게 성공한 사람은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고 망해도 다시 복구할 힘이 없다. 하지만 꾸준하게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에게 실패는 그냥 지나는 과정일 뿐이다. 언제든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 그게 인생이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할때까지 노력했다

    일단 무슨 글인지 읽기 좀 어렵긴 한데, 노력이라는 행위의 범주에 실수를 줄이는 것, 악착같이 하는 것, 실수를 반성하는 것, 원래대로 복귀하는 것, 잘해도 자만하면 안된다는 것 등이 있는 것 같다. 이런것들을 계속할 때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앞에서 내가 지적했듯이 꾸준한 노력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최종 결과가 성공할 가능성을 높여줄 뿐이다. 운이 좋게 성공한 사람이 불안하고 망해도 복구할 힘이 없다고 하는데, 뭐 사실 꾸준하게 노력한 사람 역시 언제 망할지 모르는건 마찬가지다. 나는 성공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KLDP에서 읽은 한 명언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로또도 안사면서 부자되길 바라는 사람 심보는 도둑놈이닷!

    KLDP.org의 어느 회원의 일갈.
  • かぎりない よくぼうの なかに끝없는 욕망 속에

    かぎりない よくぼうの なかに끝없는 욕망 속에
    노래 : 하야시바라 메구미

    なぜ あらそうの? なぜ きつくの?
    왜 싸우는 거지? 왜 상처입는 거지?

    この うでに たくされて いる
    내 손에 맡겨진

    ゆめが ときに おもく なるのよ
    꿈이 때때로 무거워져.

    しあわせて だれもが ほしがる Ecstasy
    행복이란 누구나 원하는 황홀감

    むさぼって てに して それでも もとめる
    욕심부려 손에 넣고 그러고도 더 바라지

    (a)
    かぎりない よくぼうの なかに
    끝없는 욕망 속에

    いえぬ ぎせいも あるけど
    말못할 희생도 있지만

    じょうねつと ゆうき あるなら
    정열과 용기가 있다면

    あるき つづける しかない
    계속 걸어갈 수밖에 없어.

    なぜ わらえるの? なぜ はしゃげるの?
    왜 웃을 수 있는 거지? 어째서 들뜰 수 있는거지?

    かなしみを のり こえる ため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ひとは それを よじ のぼってく
    사람은 그것을 기어 오른다

    つらい こと うすれて ゆくから To be continued
    괴로운 일은 잊혀져 갈테니까, 계속해서,

    この むねの きずさえ プラスに かえるわ
    이 가슴의 상처마저 장점으로 바꿔버려

    かぎりない よくぼうが あれば
    끝없는 욕망이 있으면

    たち なおる ことも できる
    다시 일어서는 것도 가능해.

    しあわせを しりたいのなら
    행복을 알고 싶다면

    あるき つづける しかない
    계속 걸어갈 수밖에 없어.

    * Repeat (a)

  • 희대의 사기극 우주는 없다(9)

    이 책을 앞에서부터 전부 리뷰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저자는 우주발사체 발사 영상이 조작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여러개의 유튜브 동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쪼개서 발사체의 각도와 속도를 분석하고 있는데, 애초에 렌즈에 의한 왜곡이 보정되지도 않고 시간과 거리가 교정되지도 않은 유튜브 동영상을 놓고 과학적인 분석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오류가 많은 주장이다.

    229쪽에서부터 234쪽까지는 외계인에 대한 음모론을 적고 있다. 엘론 머스크가 화성에 사람을 보내서 ‘식민지’를 만들겠다는 주장에 대해, ‘식민지’라는 말은 거기에 누가 살고 있을 때 정복하겠다는 용어이므로 식민지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화성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세뇌시키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째서 이것이 거짓말인가? 우주는 없으니까! ….라고 한다. 그럼 우주는 누가 만든 개념인가? 인류를 지배하려는 렙틸리언, 파충류 종족이 창작해서 인간에게 주입한 가짜 개념이라고 한다. 신이라는 존재를 말살하기 위해서 우주를 창조해서 인간들에게 가르쳐줬다고도 한다.

    이걸 어디서부터 반박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분명한건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뭘 분석을 해 봐야 우주의 실존 문제와는 별로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유튜브 동영상이 실제로 조작되었다고 쳐도, 사실은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증거를 갖고 오라고 한다면, 어차피 음모론자들은 무슨 증거를 갖고 와도 안 믿을테니 별로 제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237쪽에서는 저자 본인이 비밀 싸이버 특공대의 집중 마크를 받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음모론자들이 세상에 많은데 굳이 감시하면서 진실을 숨길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우주 발사체 영상을 분석한 2부는 451쪽까지 이어지는데, 마지막 부분인 450쪽에서 몇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우주개발계획을 수립한 것이 아무 쓸모 없고, 6년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즉, 다 거짓말이고 자기들이 해먹기 위해 내세우는 가짜 계획이라는 뜻이다. 음, 나는 사실 2020년에 달탐사를 보내겠다는 주장은 그때도 지금도 전혀 믿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주개발사업이 다 헛된 것은 아니다.

    이어서 그는 굉장히 신기한 얘기를 한다. 2장까지 그가 증명한 것은 단지 ‘인류는 우주 로켓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지 ‘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거의 처음으로 등장한 논리적인 진술이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는 천체물리학이야말로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3부가 시작된다…

    (이어서…)

  • 이 글을 읽을 어느 20대 청년에게

    이 글을 읽을 어느 20대 청년에게.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당신은 글을 들어가면서 정해진 답이 없고, 확실한 객관성도 없다고 했습니다. 맞아요. 신박사가 세상을 해석하는 법은 완벽하지 않으며, 더 합리적인가에 따라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 맞아요. 신박사에게 반발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따르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당신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제가 신박사에게 문제삼고 싶은 점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당신에게 생각해 보라고 싶은 것 딱 하나는 “당신은 신박사로부터 독립할 수 있습니까?” 입니다. 당신이 신박사를 만나고 나서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되었고,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고, 더 발전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면, 그에 대해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딱 하나만 깊이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신박사가 없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가 없어지면 어떻게 살 겁니까? 체인지그라운드를 비롯한 그의 집단에서 신박사가 없다면 졸꾸러기들은 어떻게 될까요?
    사고력이 향상되고 문해력이 늘어나고 실제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모든 생각과 판단을 신박사에게 의존하지 않고, 신박사 없이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합리적인 생각이라도,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신박사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그건 그냥 신박사가 넣어준 말을 암기한 것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지금 그것이 진정 당신의 생각이 맞습니까? 신박사가 더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지금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까? 지금과 같은 결론입니까? 저에게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를 싫어해도 됩니다. 여기까지 제 글을 읽었으면,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반드시 신박사랑 함께 해야만 그렇게 합리적으로 살 수 있는 인간입니까?

  • 따끔한 한마디?

    인생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독려하기 위해서 따끔한 한마디를 듣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은 그런게 유행인 것 같다. 가슴에 와닿는 따끔한 한마디를 독설, 팩트폭력, 설매 등이라고 한다. 과연 따끔한 한마디는 효과가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이 실패하거나 일이 풀리지 않은 이유가 아직 열정이 부족해서, 의지가 부족해서, 노력을 덜 해서 등등을 들 수 있다. 유명한 강연자들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바꾸기 전에 너 자신을 먼저 바꾸라고 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지만 자기 자신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사실인가?

    처음에 따끔한 말을 들었을 때는 어느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의지가 부족해서, 또는 노력이 부족해서 일이 잘 안 풀린 경우라면 여기에 조금의 노력을 더 해서 자신의 인생을 얼마든지 잘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의지와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얼마든지 있으며, 세상엔 도전해서 안되는 일로 넘쳐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메타인지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하려는 일이, 노력을 더 해서 풀릴 것인지, 운이 좋아야 할지, 도움을 얻어야 할지,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이걸 끊임없이 고민해서 스스로 답을 구해야 한다. 그 누구의 조언도, 그 어떤 책도 자기의 인생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이 나에게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같은 상황도 아니고 같은 조건도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헤쳐나가는 것은 자신의 일이지 누구의 말을 듣고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건 좋은 일이다. 조언을 많이 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고민해서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자신이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서면, 의지가 없어도 할 수 있는 분야로 진로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자기의 인생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심지어, 선택을 자기 맘대로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기 인생의 책임은 자기 몫이다.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인생의 고민은 스스로 답을 찾아내야 한다.

    만약 일이 실패하고, 잘 안되고, 망해가는 것 같다면,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신을 차리게 해 줄 따끔한 한마디가 아닐 수 있다.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깊은 고민과, 미래를 어떻게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용기이다. 자신의 목표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도, 이쯤에서 포기하는 것도 모두 용감한 선택이다.

    어느 한 사람의 조언, 평가를 듣지 말고, 최대한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들어라.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다 찾아 들어라.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 조차도 틀릴 수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스스로 찾고,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누구나 타인의 인생에 이런저런 말들을 할 수 있으나, 아무도 그 결과를 책임질 수도 없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 인생의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다. 덜 억울하려면 선택이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했으면 좋겠다.

  • 소통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법(5)

    ‘뼈있는 아무말 대잔치’에서 ‘소통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결’의 마지막 비결인 ‘논리적이어야 한다’의 두번째 조건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토론이 필요하다’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먼저, 꾸준한 독서의 결과를 알아보자.

    신영준 박사의 브런치에 올라온 글에 달린 댓글 중 하나

    그는 독서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그의 독서 속도에 감탄할 만큼 빠른 것 같다. 읽기를 얼마나 빨리 하느냐는 독서를 잘 하는 것과 별로 관련이 없다. 독서 속도가 현저히 느려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가 아니라면 빠르든 느리든 독서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읽은 책을 얼마나 이해했는가, 그리고 그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이다. 그와 책을 읽고 책 내용에 대해 토론을 해보기 전에 이것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의 브런치에 굉장히 많은 책 리뷰가 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https://brunch.co.kr/@dryjshin/295

    위의 글은 ‘초콜릿 하트 드래곤’이라는 소설책에 관한 그의 리뷰이다. 리뷰 치고는 좀 이상한데, 사실은 그 소설책에 관한 리뷰를 한국어로 번역한 글이다. 책, 특히 소설을 소개한다고 하면 그 책을 읽어보고 그에 관한 간단한 줄거리 또는 도입부 전개를 소개하고, 끝까지 읽은 후 자신의 감상을 적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리뷰에는 자신의 의견은 하나도 없고 다른 사람이 읽은 후 남긴 리뷰의 번역만 적혀 있다. 이건 책을 읽지 않아도 만들 수 있는 문서이다.

    https://brunch.co.kr/@dryjshin/285

    그럼 이런 리뷰를 살펴보자. 이 리뷰는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라는 책에 관한 것인데, 그 책에 대해서는 나도 이 블로그에 글을 남긴 적이 있다.

    내 리뷰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유사과학책이거나 그에 준하는, 과학적이지 않은 지식을 전달하는 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의 신박사의 리뷰에서 그는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진실로 받아들이고 글루텐을 싫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글루텐은 밀가루에 들어 있는 그냥 단백질이고, 이게 자가면역반응을 일으켜서 문제가 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난 지금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게 아니라, 많지 않다고 했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글루텐을 아무리 먹어도 위의 책에서 나온 이상증상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글루텐을 많이 먹었을 때의 효과는 체증증가뿐이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항목들 역시 진리가 아니며, 이와 같은 내용을 읽었을 때,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책의 주장이 상식과 다른 내용이기 때문에 ‘사실인가?’를 먼저 의심하고 그 다음 반대되는 주장에 대해 찾아보고, 교차검증하는 것이 순서이다. 특히, 그는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전문가이므로 어떤 주장에 대해서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에 대해 많은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한다는 것은 내 상식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그는 전자공학 박사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언급한 전자파에 관한 내용이 틀렸음을 지적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이 책을 읽지 않았거나, 이 책을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 책을 읽고, 충분히 이해했지만, 추천하겠다고 생각한 경우이다. 어떤 식이든 이 책을 읽은 결론이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이라면 독해를 못했거나, 또는 이전에 썼던 글에 적었듯이 도덕적이지 못한 일이다. 이와 같은 점을 볼 때, 나는 그의 독해력이 매우 의심스럽다.

    두번째로 제시된 ‘글쓰기’에 대해서는 어떨까? 그의 글쓰기 능력은 그가 쓴 글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다음의 책 리뷰를 살펴보자.

    https://brunch.co.kr/@dryjshin/328

    첫 문단을 보자. 미래에 대한 예측이 어렵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제하며 이 글이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직후에 그 진술의 한계를 지적하며, 다시 미래에 대한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식으로 진술을 바꾼다. 즉,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계에서 …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방향성을 알게 되면 좋은 점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글을 도입하는 것은 읽는 입장에서 굉장히 뜬금없는 이야기다. 이 글을 읽을 독자는 복잡계의 전문가가 아니다. 미래학의 전문가도 아니고, 사회학의 전문가도 아니다. 아직 이 리뷰에서 언급한 책을 읽지 않은 독자이다. 즉, 미래 예측과 복잡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때 이 개념들이 어째서 연관이 되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다.

    이어서, 글을 다시 시작했다. 앞의 문단과 이 문단은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데, 이럴거면 앞 문단을 빼고 여기부터 시작해도 된다. 특징적으로 보이는 표현은 ‘아이비리그인 콜롬비아 대학’, ‘엄청난 데이터 분석’, ‘엄청난 통찰력’, ‘가장 완벽한 투자’와 같이 과장된 수식어구를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은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사회과학 분야의 책에 대한 추천으로는 부적합한데, 특히나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진행하지도 않은 첫 부분부터 칭찬으로 시작하는 것은 더욱 좋지 않다. 책에 대한 긍정적인 편견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 읽는 사람만 손해다’라는 표현 역시 적절하지 않은데, 이 책을 읽어서 어떤 이익을 볼 수 있는지, 읽지 않으면 어째서 손해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책에 대한 객관적 평가 없이 뜬구름잡는 이야기와 평가로만 반복되고 있다. 이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끝으로, ‘토론’에 대해서는 나와 그의 토론 내용을 보면 그에게 토론의 자질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쓴 글을 잘 읽었는지 확인하려는 질문에 ‘니들은 왜 이렇게 없어보이냐’라면서 내 글에 대해 어떤지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고 있다.

    나는 내 글에 대해서 어떤지 평가해 보라고 노골적으로 요청을 했고, 그에 대해서 별다른 설명 없이 내 글이 좋지 않다고 결론을 내고 있다. 어디가 어떻게 문제인지는 단 하나의 설명도 없이 말이다. 심지어, 자기 의견도 아니고 직원의 의견이다.

    그는 끝까지 나와의 토론을 거부하고 인신공격만 했다. 이걸로 미루어 볼 때, 그에게 토론의 소질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여기까지 글을 읽었을 때 그의 반응은 “겨우 그런 쓴소리 하나 들었다고 열받아서, 열폭해서 이렇게 긴 글을 쓴거야? ㅋㅋㅋ” 일 것이다. “열폭하는 걸 보니 자존감 너무 낮네?”라는 말도 할 것이고. 내가 거기에 어떤 반응을 하더라도 그는 나에게 “정신승리는 패자의 특권”이라는 내용의 반응을 할 것이다. 뭐 어떻게 생각하든 내 생각을 그가 알 리 없고, 그의 생각을 내가 알 리 없으니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의도로 이맇게 긴 글을 썼는지가 중요한가? 그것은 나와 그에게만 중요하지 그 외에 이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른 독자들은 이 글을 이 글의 내용으로만 판단할 것이며, 이 글을 읽고 내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을 각자 생각할 것이다. 그뿐이다.

    한편, 신영준 박사가 강력 추천한 ‘뼈있는 아무말 대잔치’에 나온 ‘소통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결’의 항목들을 바탕으로 신영준 박사에게 소통의 달인이 될 소질이 있는가를 평가해 보았다. 이 글을 쭉 읽은 독자들은 이미 알겠지만, 그에 대한 내 결론은 ‘그런거 없다’이다. 이 문제에 대해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궁금하다.

  • 소통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결(4)

    소통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결의 마지막 항목인 ‘논리적이어야 한다’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이 책에서는 이 비결의 첫번째 덕목으로 ‘감정이 앞서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감정이 앞서서 발언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이 영상의 19분 50초 부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다음에 제가 8월 이후에 김용석씨한테 1억 내기를 제안 할 겁니다. 기부로. 1억 내기를 제안할 거에요. 김용석씨가 이기든 제가 지든 누군가는 1억 기부를 하는 겁니다.”

    김용석씨가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지금 이 맥락에서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그에게 내기를 제안한다고 했는데, ‘김용석씨가 이기면’ 또는 ‘신영준이 지면’ 누군가는 1억 기부를 한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내기’라 함은 승패, 이기고 지는 것이 정해지는 상황을 놓고 겨루겠다는 뜻이다. 물론 무승부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둘 중 누군가 이겼다면 그 상대편은 진 것이다. 그런데 김용석과 신영준이 내기를 했을 때, 김용석이 이긴 경우는 반드시, 그리고 오직, 신영준이 진 경우에만 그렇다. 즉, 그는 본인이 반드시 1억을 기부하겠다는 점을 공언한 것이다. 이 경우, 김용석은 이 내기에 응하기만 하면 된다. 신영준은 그 내기의 결과는 반드시 김용석씨가 이기거나 신영준이 질 것이라고 했고, 따라서 그는 1억을 기부할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사람이 말실수한 것에 대해 말꼬투리를 잡아서 물고 늘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인정한다. 난 지금 신영준의 말꼬투리를 잡아서 물고 늘어졌다. 자, 하지만 그가 감정이 앞서서 행동하는 경우는 굉장히 많이 발견된다.

    위의 동영상은 볼 필요 없고, 그에 달려 있는 댓글을 보자. 나는 저 동영상에 댓글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달았다.

    보다시피, 내 블로그에 링크를 걸었고, 내 블로그에 누구든지 들어와서 내 글을 읽고, 내 블로그에 댓글로 누구든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두 캡쳐내용의 차이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내 댓글이 사라졌다. 정확히 말해서, 내 댓글이 ‘숨김’ 처리 된 것이다. 즉, 나는 내 댓글을 여전히 볼 수 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나의 댓글을 볼 수 없다. 이런식으로 그가 댓글에 대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을 삭제 하고 있다는 사례는 또 발견되고 있다.

    이것 역시 차단되고 이미 삭제된 댓글이라 그의 브런치에서는 더이상 볼 수 없다.

    그는 본인의 뇌가 오염되는 것 같다는 이유로 내가 이 앞에 달았던 댓글들을 전부 삭제하고, 끝으로 위의 댓글들도 전부 삭제했다. 그럼 ‘뇌가 오염될 것 같’은 점은 논리적인 근거인가? 아니다. 저 발언은 이 대화의 맥락에서 물리적으로, 또는 생물학적으로 뇌가 오염된다는 말을 했을리는 없고(만약 그렇다면 댓글로 알려주기 바란다. 이 글을 고치겠다.), 그의 정신세계나 사고방식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주장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만약 그가 진정 논리적인 인간이라면, 내가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그에 따른 합당한 논리와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서 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또는, 내 주장을 반박할만한 논리와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내 주장을 받아들이거나, 적어도 지금 당장 내 주장을 반박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는 것이 논리적인 인간의 태도이다. 그러나 그는 내 주장에 대해 어떤 평가나 의견도 내지 않고 단지 삭제했다.

    이와 같은 점을 보면, 그는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며 논리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논리적이어야 한다’의 두번째 미덕인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토론이 필요하다’는 어떨까? 이 미덕에서는 세가지 항목이 강조되고 있는데, 독서, 글쓰기, 토론이다. 즉, 언어의 네가지 영역인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이것들을 잘 하고 있을까?

    (계속 이어집니다…..)

  • 소통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결(3)

    이어서 ‘소통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결’의 두번째 비결인 ‘높은 공감 능력을 보여야 한다’를 살펴보겠다. 여기서 높은 공감능력을 보이는 두가지 방법으로 ‘상대방의 마음과 생각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와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과연 그는 높은 공감능력을 보여주고 있을까?

    먼저, 상대방의 마음과 생각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할텐데, 어떨지 모르겠다. 다음의 예제를 보자.

    http://melotopia.net/b/?p=12086 이 블로그에 얼마 전에 쓴 글이다.

    여기서 나는 ‘권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언급한 ‘코넬 대학에서 MBA받은 친구에게 컨설팅해주는 정도의 권위’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없다는 뜻이다. 즉, 여기서 내가 의도한 것은 ‘난 이 분야의 권위자가 아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그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은 차단되어 볼 수 없는 그 글, 차단이 풀려도 이미 삭제되어서 더이상 볼 수 없다.

    내가 권위가 없다고 한 것에 대해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권위를 자랑한다. 물론 하버드 MBA든 시총 3000억 회사 오너든 내가 알게 뭔가. 애초에 내가 자랑한게 권위가 아닌데, 저렇게 자신의 권위를 자랑한다고 해도 놀랄리가 없다. 조롱의 의미로 ‘ㅋㅋㅋㅋㅋㅋ’를 여러개 붙인걸로 봐서 그는 내가 정말 권위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달아둔 댓글이 나의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내가 내 입으로 권위가 있다고 쓴 것은 사실인데, 왜 그렇게 썼을까? 내가 어떤 의도로 그 글을 썼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앞에서 내가 그에게 적대적인 의도로, 최소한 호감은 아닌 형태로 말을 걸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인데도 말이다.

    물론 이 내용에 대해 간단한 반박은, 내가 별 생각 없이 글을 쓰고, 별 생각 없이 댓글을 달고 나서, 지금 이 글을 쓰기위해서 말을 꾸며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은 정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저 글을 쓰던 시점과 저 댓글을 달던 시점에 어떤 생각을 했을지, 나도 알지 못한 나의 마음과 생각을 파악해서 알려준다면 좋겠다. 숙고해서 반성하도록 하겠다.

    ‘높은 공감 능력을 보여야 한다’의 두번째 방법으로,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다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위 내용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내용의 일부이다. ‘마지막에 저 댓글 쓴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쓴 그 마지막의 저 댓글은 다음과 같다.

    물론 내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공무원들이 기분나쁠 소지가 있다는 점은 나도 알겠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 댓글을 알아야 할 대상은 나의 상사가 아니라 공무원들이다. 그건 그렇고, 나의 상사에게 나를 제대로 갈궈주라고 하겠다는 걸로 봐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지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지워져서 볼 수 없는 댓글이다.

    그러나 그는 그걸 당사자인 나에게 물어보았고, 난 당연히 정답을 알고 있지만 그걸 알려주고 말고는 순전히 내 자유이므로 알려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물론 비밀은 아닌데, 이 글에도 정답을 적어놓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 관심이 있다면 금방 찾을 수 있으니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그는 반드시 알아야 하고, 본인이 알아내려고 한다는 의도를 드러낸 적대적인 대상의 생각과 상황을 알지 못하거나, 오해하였다. 이것이 나타내는 것은 그에게 어떤 한 개인의 생각이나 상황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적어도 충분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는 높은 공감능력을 보일 수 있는가? 나는 그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다. 혹시 독자분들 중에서 이 사례가 너무 극단적이어서 일방적으로 신박사에게 불리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 있다면, 나에게 그 사실과 적당한 근거를 알려주신다면, 이 글을 그에 맞게 고치도록 하겠다.

    ‘소통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결’ 중 벌써 두가지가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비결인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어떨까? 다음 글에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계속 이어집니다…)

  • 소통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결(2)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의 두번째 항목으로 ‘솔선수범’이 적혀 있다. 음, 이건 원래 의도대로라면 사실 솔선수범을 안 한 경우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부분은 망했다. 솔선수범을 한 경우를 찾아버렸다. 이 글을 기대하면서 읽고 있었을 독자 여러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근거없는 글을 쓸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위 동영상의 1분 36초 부분에서 “여러분, 비지니스를 하면 다 적이에요.”
    2분 24초 부분에서 “여러분, 비지니스 판으로 들어온 이상은 … 시쳇길밖에 없습니다. … 앞에 적이 나타나면 무조건 싸워서 이기고 죽여야 됩니다.”

    이걸 듣고 있다보면, ‘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을 꼭 실천할 필요가 없다면서 실제로 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을 반대로 실천하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욕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등, 솔선수범을 하는 사람이다.

    3분 13초째에 “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의 오해가 뭐냐면은, 할말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게 우리나라의 더러운 문화가 되어서…” 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할말은 해라!”라고 하는데,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나도 신영준 박사에게 할 말이 있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솔선수범은 하고 있고… (맥락 없이 앞뒤 잘라버렸다고 할까봐 그 맥락을 얘기하자면, 이 말 앞에서는 블루오션/레드오션 얘기를 했기에 이 발언과 상관이 없고, 그 이후에는 알바생이 사장에게 근로계약서를 쓰자는 말을 과감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내가 신영준 박사에게 이만큼 과감하게 할말을 할 수 있었다.)

    ‘뼈있는 아무말 대잔치’에서는 ‘소통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결’의 첫번째 조건인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의 세번째 미덕으로 ‘도덕적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적혀 있다. 도덕적 권위는 신뢰를 쌓기위해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럼 그는 도덕적 권위가 잘 세워져 있는가? 그의 강연을 다 들은 것도 아니고 그의 동영상을 전부 본것도 아니지만, 하나의 사례를 들고 와 보자.

    PPSS기사

    먼저 신영준 박사는 위의 기사에 대해 전면적으로 오해와 악의로 가득찬 기사라고 주장하며 본인의 강연이 굉장히 호응을 많이 받았고 좋은 강연이었다고 하고 있다.

    자, 이 강연의 ‘내용’이 어땠는지는 평가하지 않겠다. 뭔가 좋은 내용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 보지도 않고 평가하는 건 공정하지 않을테니까.

    이 동영상의 1분 24초 부분을 보면 본인이 평소에, 강연에서 욕설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저 PPSS기사에서 욕설과 비속어 등을 사용한 것은 인정하는 것으로 보겠다.

    그런데, 2분 13초에 보면 “미친 강연”, “씹새끼”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아마 그는 이와 같은 표현을 이 동영상의 이 부분에서 어쩌다가 한번 쓴것이 아니라, 평소에, 강연에서 하고 다닐 것으로 보인다. 그의 브런치에서 발견되는 책 리뷰를 보면 ‘미친’이라는 표현이 자주 발견되는 것이 이 추측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그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도 편하게 놓는다.

    주의! 신박사가 전해달라는 ‘영준’은 ‘신영준 박사’가 아니다.
    내가 그의 브런치에 썼던 댓글들이다.
    (여기서 내가 반말을 사용한건 상대가 먼저 반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그의 ‘행동’을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가할 수 없지만, 언어사용으로만 놓고 보면 그는 도덕적이지 못하다. 첫째로, “미친”이라는 표현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해 비하하는 표현이다. 물론 “미친”이라는 표현이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을 직접 대상화하지는 않지만, “넌 미쳤다”라는 표현이 비하적 표현으로 쓰이는 이유는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은 낮게 보는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씹새끼”라는 표현도 도덕적이지 못한 언어사용인데, “씹”은 여성의 성기를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고, “새끼”도 사람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며, 그걸 합친 단어 역시 사람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다.

    셋째로 그는 누군지 알지 못하는 익명의 상대방에게 합의하지 않고 반말을 사용한다. 언어에는 문화가 담겨있고, 한국어에는 상대에 대해 친근해지기 전 까지는 존댓말을 사용하는 문화가 있다. 상대가 먼저 말을 편하게 놓자고 제안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먼저 제안하지도 않았고, 그런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반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상대에 대해 무례한 언어사용이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공개되지 않은 자리나 소규모의 사적인 대화에서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크게 불쾌해하지 않는 경우에 사용하는 것 정도까지는 너무 흔하다보니 일일이 문제삼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개된 발언, 공적인 발화에서는 문제가 된다. 강연이나 발언을 들은 사람이 아무도 불쾌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충분히 문제삼을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데, 특정한 조건의 인간을 비하하는 표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 역시 그가 도덕적이지 않다는 근거로 충분하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그는 신뢰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세가지 조건인 언행일치, 솔선수범, 도덕적 권위 중 적어도 두가지가 부족하다. 그는 신뢰받는 사람일까? 나는 그에게 ‘뼈있는 아무말 대잔치’를 열번 정도 정독하라고 권하고 싶다.

    (글이 이어서 계속됩니다…)